“당신이 샌프란시스코에 방문한다면 머리에 꽃 장식을 한 온화한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거리에서는 사랑을 외치는 사람들의 회합(會合)이 열리니 당신도 머리에 꽃 장식을 하는 것을 잊지 마세요” 스콧 매켄지의 노래 ‘San Francisco’는 중·고등학교 때 뜻도 잘 모르면서 흥얼거리던 팝송 중 하나였다. 그러나 노래의 멜로디는 최루가스가 난무하던 1980년대 한국의 상황과는 전혀 다른 신세계가 샌프란시스코에 펼쳐져 있음을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왠지 무한한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가득한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로마 올림픽에서 우승한 무하마드 알리는 인종 차별에 항의하며 그에게 수여된 금메달을 강물에 던져버리고,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이 그의 노래 ‘Blowing in the wind’에서 자유의 갈망과 반전(反戰)을 외칠 무렵, 이 도시에서는 히피문화가 태동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Haight Street’ 부근으로 몰려들어 기성세대들이 벌이고 있는 무의미한 전쟁을 중단하고 고리타분한 구습을 타파하자는 목소리를 높였다. 샌프란시스코는 평화, 자유, 화합, 사랑의 기치를 내건 1960년대 히피문화운동의 발상지이다.

  미국의 동맹국임을 자처하던 국가의 젊은이들이 베트남전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나갈 때 이 도시에 모여든 사람들은 밥 말리와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에 몸을 흔들며 인종과 계급의 차이를 무시해 버렸다. 기타와 노래는 히피들의 무기가 되었고, 아무런 패턴 없이 마구 색칠하여 찢어 입은 옷은 그들의 상징이 되었다. 히피문화는 시간이 갈수록 마약 중독과 무분별한 성행위 등의 폐단을 낳으며 점차 사라져 갔지만 1980년대까지의 현대 문화의 단면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주제가 되었다. “나를 ‘검둥이(Nigger)’라고 모욕하지 않는 베트남 사람들을 죽일 이유는 나에게 없다” 라고 말하며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징집을 거부한 스포츠맨 알리의 태도는 히피문화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참으로 어린 생각이었지만 나는 어느 항공사가 발행한 달력 속의 사진으로 존재하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에 가보기 위해 꼭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다. 금문교 위를 고급 승용차를 타고 건너보는 학창시절의 꿈은 이미 오래 전에 이루었지만 왜 대학에 들어가야만 금문교에 가볼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건 아마 청소년이었던 나의 마음속에 건강하지 못한 대한민국 사회가 심어준 신분상승과 왜곡된 계급의식이 도사리고 있어서였을까. 금문교 위를 부는 바람만이 그 답을 알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관광명소는 너무 많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한때 이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미국이 존재하는 마지막 힘이 아닐 수 없다. 이곳에서는 제국주의자로서의 미국이 아닌 기존의 것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의지의 수호자로서의 미국이 보인다. 현재 한국을 농단하고 있는 위정자들의 비참한 말로(末路) 역시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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