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숭실대의 대표들은 한자리에 모여 시국선언을 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 현장을 지켜보았다. 분위기는 다소 차분했고 내용도 절제되어 있었다. 시국을 향한 분노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시국선언은 지켜보는 내내 아쉬웠다.

  한국 최초의 대학이었던 숭실대는 1938년 자진폐교했다. 일제가 숭실의 정체성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숭실은 대학으로서 정체성이 위협받을 때 결사의 각오로 폐교도 마다하지 않았다. 17년간 폐교의 역사는 숭실의 정신을 지켜냈다.

  다시 한 번 대학생의 정체성을 확인해 볼 시간이 왔다. 대학생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대학생은 미래의 대한민국을 맞이할 선봉에 서 있다. 대학생은 앞으로 다가올 대한민국을 어떤 모습으로 맞이할지 질문하고 결정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번 11월 1일 숭실의 시국선언에서 숭실의 정신과 대학의 정체성이 담겨있길 바랐다. 하지만 시국선언의 내용문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어조는 차분했다. 국정운영의 무능력을 드러낸 대통령에게 귀를 기울여 달라는 소리는 초라했다. 이미 정당성을 상실한 대통령에게 협조를 요구한다는 말은 연약하게 느껴졌다.

  숭실의 대표들은 좀 더 담대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정의를 향한 우리의 각오가 새겨질 수 있도록 과감하게 말할 필요가 있었다. 정의롭지 않은 일제에 결사의 각오로 맞섰던 숭실의 정신처럼 부도덕한 정부를 단호히 거부해야 했다. 대통령은 자진사퇴를 해야 한다고, 우리는 더 이상 이 정부에 대한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숭실의 정신이 역사 속에서만 존재하게 해선 안 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대학생인 우리가 제일 먼저 맞이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원한다면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리는 몸을 사려선 안 된다. 힘겹고 풍파를 맞을지라도 선봉에 서야 한다. 담대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숭실의 선배님들은 자랑스러운 숭실의 역사가 되었다. 오늘날 숭실의 시국선언이 선배님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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