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금), 출간한 책마다 완판 신화를 이룩했던 역사 저술가 이덕일(사학·85) 동문을 만났다. 그는 식민사관을 극복하기 위해 지금까지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등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역사 저서들을 써 왔다. 한편 그는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라는 저서에서 고려대 김현구 교수를 식민 사학자라고 실명 비판했다는 이유로 지난 2014년 김 교수에게 고소당한 바 있다. 그런데도 그는 인터뷰 중 “우리나라에 널리 퍼진 식민사관을 없애고 사람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고 싶어요”라며 식민사관을 바로잡는 데 굳은 의지를 보였다. 지금부터 이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떻게 역사 저술가를 꿈꾸게 되셨나요?

  저는 본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사학과 대학원에 입학했어요.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나라 역사학계에 식민사관이 깊게 자리 잡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식민사관은 일제가 한국 침략과 식민 지배의 학문적 기반을 확고하게 하려고 조작해 낸 역사관이에요. 우리나라에서는 사학과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려면 식민사관을 바탕으로 한 논문을 써야만 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주류 역사학자들이 대부분 식민사관을 추종하기 때문이죠. 저는 역사 저술가가 되어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식민사관을 바로 잡고 싶었어요.

 

‘칼날 위의 역사’ 및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등 40여 권의 책을 쓰셨어요. 처음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97년도에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가 출간되었는데 사람들로부터 상당한 호평을 받았어요. 신문이나 방송 등 여러 매체에서도 제 책이 여러 번 소개되었죠. 그때 ‘이 길로 나가도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뒤로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쓰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에게 가장 의미 있는 저서는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예요.

지난 2014년 이 소장님은 김현구 교수로부터 출판물에 대한 명예 훼손죄로 고소당하셨고, 지난 4일 서울서부지방법원 항소심 재판부로부터 무죄 선고를 받으셨어요. 그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세요.

  2014년도에 김현구 교수가 저를 명예 훼손죄로 고소했어요. 제가 저의 저서인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김현구 교수가 식민사관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김현구 교수는 책의 총론 부분에서는 임나일본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뒤에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임나일본부의 존재를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어요. 심지어 그의 저서에서 ‘가야임나’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어요. ‘가야임나’는 4세기 후반 일본이 가야에 ‘일본부’라는 기관을 두어 한반도를 직접 지배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김현구 교수를 지적한 것뿐이죠.

  처음에 서울서부지검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저를 기소했고 이에 원심에서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서부지법 형사1부에서는 “임나일본부설은 공적인 관심사이므로 폭넓은 논평의 자유가 필요하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어요.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에 논란의 대상이 되었나요?

  그 책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는 바로 실명 거론을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한국사회에 아직도 식민사관이 깊이 남아 있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들이 자신의 살길을 찾아 조국을 배신하는 식민사관적인 모습을 학생들이 배우게 되면 알게 모르게 그런 행동이 내면화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우선 실명 거론을 통해 식민 사학자들의 태도를 직접 비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에서 저는 실명 거론과 함께 주로 우리나라의 역사학계에 주류적인 입장을 뒷받침하는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하기도 했어요.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조선총독부 및 일제의 식민사관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일본은 서기 346년경 백제 선조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야마토 왕국을 세우면서 시작되었어요. 정리하자면 일본의 역사는 우리나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일제강점기 당시에 조선총독부는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었어요. 조선사편수회는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하기 쉽게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기관이었죠.

  일제강점기 당시에 조선사편수회는 한사군이 평양 일대에 있었다고 주장했어요. 한사군은 기원전 108년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킨 후 그 영토를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4개의 행정구역인 낙랑‧진번‧현도‧임둔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하지만 그 당시에 쓰인 중국 역사서에는 모두 하나같이 한사국이 지금의 중국 하북성 일대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아직도 식민 사학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서 이 주장을 고집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한사군이 평양 일대에 위치했다는 주장은 요동반도와 한반도 서북부 지역에 있던 고조선의 입지를 단박에 한반도 남부 지역으로 좁혀 버리기 때문이에요. 이 주장은 고구려‧발해 등 현재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려는 동북공정을 옹호하는 주장과 같아요.

  또한 조선사편수회는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가 존재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했어요. 임나일본부는 4세기 후반 일본 야마토 왕국이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하기 위해 한반도 남부지역에 세운 통치기구예요. 임나일본부설을 기반으로 현재 일부 식민 사학자들은 서기 369년부터 562년까지 일본이 우리나라를 통치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그러나 제 생각에 임나일본부설은 그저 일본이 우리나라를 통치하려고 만든 설에 불과해요. 만약 일본이200년 이상 우리나라를 지배했다면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어야 하는데 역사서에는 임나일본부에 대한 내용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아요. 그래서 북한의 한 학자는 임나가 고구려·백제·신라·가야 사람들이 일본에 진출해서 세운 속국 중 하나라고 주장하기도 해요.

식민사관 청산을 위해 어떤 일을 해오셨나요?

  저는 식민사관 청산을 위해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학자들을 해체시키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어요. 지난 6월 26일(일)에 설립된 ‘미래로 가는 바른 역사 협의회’는 50여 개의 단체들이 국회의원 회관에서 식민사학 규탄대회를 열면서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물론 저도 이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고요. 특히 이 단체에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대거 가담했는데 그 후손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은 거의 처음이에요.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해서 아직도 친일파들이 사회의 주류 세력으로 남아 있어요. 그에 비해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사회에 제대로 의견을 표명하지도 못한 채 살아왔죠. 이번에 제가 김현구 교수로부터 고발당한 사건을 계기로 그들은 분노했고 목소리를 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는 사료를 기반으로 한 독립운동가들의 역사관을 복원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이러한 역사관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에요.

올바른 역사관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은 굉장히 포괄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은 주로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일이었어요. 우리가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갈 수 없으니까 선조들이 남긴 사료를 바탕으로 그 시대를 해석할 수밖에 없는 거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료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에요. 왜냐하면 사료는 역사 속의 승자들이 남기는 기록이기 때문이죠. 그 사료에 담겨 있는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게 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역사 속에서 지배층보다 피지배층의 삶을 복원하는 작업에 집중했어요. 올바른 역사관은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저는 학자로서 열심히 연구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어요. 그 밖에도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올바른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고 ‘식민사학 해체 국민운동본부’나 ‘미래로 가는 바른 역사 협의회’ 등 다양한 단체 활동을 하면서 우리 사회가 건강한 역사관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에요.  

  더불어 독립운동가처럼 올바른 길을 추구했지만 지배층에 묻혀 사라진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는 일을 계속하려고 해요. 과연 사람들에게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말해보라고 했을 때 몇 명이나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이러한 일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갖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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