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아이들, 시간을 잡아먹는 요괴, 현실을 진실로 확신하는 어른들과 존재하지 않는 상상조차 확신하는 아이들. 저예산 독립 영화 <잉투기>로 존재감을 드러냈던 엄태화 감독이 신작과 함께 돌아왔다. 특별한 시간을 넘나드는 판타지 영화 <가려진 시간>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신비로운 영상미, 그럼에도 현실의 끈을 놓지 않은 엄태화 감독의 상상력은 초현실주의 동화로서의 영화를 완성시킨다. 그러나 엄태화 감독의 동화는 마냥 낭만적이지 않다. 인간이란 결국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믿음과 관계에 관한 이야기로 풀어낸다.
새아버지와 함께 화노도로 이사 온 수린(신은수)은 공상에 빠져 보육원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현실이 아닌 상상 속의 세계를 꿈꾸는 수린을 이해하는 것은 오직 성민(이효제)뿐이다. 가족을 잃은 두 아이에게 점철된 외로움은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심상이다. 그들이 가진 공통된 외로움은 서로에 대한 믿음을 통해 치유되어 간다.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그들만의 암호를 만들며,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그러나 <가려진 시간>이 힘을 발휘하는 순간은 두 인물에게 다가오는 현실이 스릴러와 다름없음에 있다. 터널 폭파가 진행되는 산에서 사라진 성민은 며칠 만에 어른(강동원)의 모습으로 수린의 곁에 돌아온다. 7년의 멈춰진 시간을 걸어온 성민에게 수린은 기꺼이 도피처가 되어 준다. 그러나 그들에게 놓인 현실은 분명한 진실을 찾는 어른들과의 줄다리기이다. 논리적인 현실만을 진실로 인지하는 어른들과 다르게 그들의 관계는 믿음으로 가득하다. 결코 악인으로 그려지지 않지만 그들을 추적하는 어른들에게는 현실을 직관하는 눈만이 그들이 가진 믿음의 전부다. 영화 <가려진 시간>은 이렇듯 어른이 되어 가며 잃어버리는 조건 없는 믿음에 관한 쓸쓸함을 내포하고 있다. 동시에 진정한 믿음과 진실에 관한 끊임없는 질문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현실과 멈춰진 시간 사이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은 채 <가려진 시간>은 영상미에서 역시 출중한 강점을 보인다. 1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