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위기를 느낀 학생들의 움직임에 교수들도 동참해…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역할을 하고 있던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와 관련된 이화여대 특혜 논란을 시작으로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며 진실 공방전에 열을 올리는 지금, 대학생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대학들은 연달아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청계광장에서 일어난 시위에 공식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민주주의 위기 느낀 대학생, 시국선언 번져가
 
  지난달 26일(수)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입학·학사관리 특혜 의혹을 제기해 총장 사퇴까지 이끌어낸 이화여대는 처음으로 “대한민국, 최순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까”라는 제목으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헌정사상 최악의 국기문란과 국정농단이다”며 “박근혜 정권은 진정성 없는 사과 대신 사태의 엄중함을 꺠우??진상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대학가에서 시국선언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고, 청년단체인 ‘청년하다’의 전국시국선언지도에 따르면 현재 108개의 대학이 시국선언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세훨호 참사,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등의 국면에서 일부 대학의 시국선언이 이뤄지긴 했으나 전국적으로 100여 곳 넘게 그 흐름이 확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학가의 시국선언이 우리의 역사에서 가졌던 의미는 작지 않다. 4·19혁명과 6월 민주항쟁에서 이뤄진 대학 시국선언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직선제 개헌이라는 값진 결과를 이끌어냈다. 서울대는 지난달 28일(금) 시국선언을 통해 “1987년 이후 또 한 번의 역사적인 순간인 이 시국에서 국민을 기만하고 정치적 대표성을 상실한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대학가의 시국선언은 공통적으로 국민이 권력을 위임한 적 없는 비선실세의 국정개입은 국민주권이라는 헌법의 가치와 민주주의 질서를 파괴했다고 주장한다. 
 
  시국선언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총학생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시국선언문을 낭독하는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다양한 형태로 시국선언이 진행되기도 했다. 지난달 31일(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시굿선언’을 하며 큰 관심을 모았다. 지난 28일(금) 한국외대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10개 언어로 번역된 시국선언문을 낭독하여 화제가 됐다. 한국외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김형환 부위원장은 “대외적인 국가 위기 상황에서 성명을 공표해야 하는데 한국외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일까 고민했다”며 “외신에서도 주목하는 와중에 외국어로 번역해서 시국선언문을 발표한다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 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시국선언 열기뿐 아니라 대학생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규탄하며 ‘동맹휴학’을 선포했다. 지난 10일(목)에는 성균관대학교 인문사회과학캠퍼스에서 인권네트워크인 ‘사람들’과 △성균관대 △한양대 △성공회대 등 5개 대학의 대학생들 20여명이 모여 ‘거리로 나서는 동맹휴학’ 호소문을 발표했다. 동맹휴학이란 학생들이 교육 또는 정치적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수단으로 벌이는 집단적인 등교 거부 운동을 말한다. 이번 동맹휴학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사태 이후 8년 만에 보이는 집단적인 움직임이다. 이들은 호소문을 통해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지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검찰은 일부 관련자들만 수사하고 처벌해 정국을 끝내려 하고 있다”며 “이 정국의 근본적인 책임은 박 대통령에게 있고 퇴진이라는 구호가 이제는 급진적인 것이 아닌 당연한 요구다”고 말했다. 
 
  전국 대학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기 시작하자 본교도 이러한 흐름에 참여했다. 지난 1일(화) 교내 3주체(△총학생회 △교수협의회 △직원 노동조합)가 학생회관 앞에서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김진아(정치외교‧12) 총학생회장은 ‘국정 파탄, 국헌 문란, 민주주의 파괴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십시오’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에서 “현재 우리나라는 국민의 주권과 권리를 유린했던 봉건사회와 다를 바 없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건의 책임자로서 국민들에게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날 시국선언에는 많은 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교내 3주체와 함께 목소리를 냈다.
 
학생들 움직임에 교수사회도 행동 잇따라
 
  이렇듯 대학사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퇴진·하야 시국선언은 들불처럼 번졌고 이에 교수들도 합세했다. 가장 먼저 지난달 27일(일)에는 성균관대 교수진 32명이 대학가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박승희 교수는 “비리 의혹과 구설수를 덮기 위한 수단으로 개헌을 내세운 박근혜 정부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며 “이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 소수의 참여자일지라도 여론을 빠르게 형성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또한 지난 2일(수)에는 전국 대학교수·연구자 2234명이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에 모여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했다. 교수 시국선언문을 제안했던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의 김서중 의장은 “국정까지 개입하는 최순실 게이트의 상황은 국정농단이다”며 “비정상화된 국정 수행과정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지고 하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국선언을 둘러싼  불협화음도 존재해
 
  시국선언의 움직임이 전국 대학가로 번지면서 학생사회 내부에서 잡음이 발생하기도 했다. 고려대에선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총학생회장단에 대한 탄핵안이 발의됐다. 총학생회 이름으로 발표된 시국선언문에 전 통합진보당 세력을 비롯한 각종 ‘운동권’ 단체의 이름이 명시됐고, ‘백남기는 죽이고 최순실은 살렸다’는 문구가 특정한 정치적 의도에 따라 작성된 것 아니냐는 이유였다. 또한, 학생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을 뿐더러 학칙에 명시돼 있는 절차를 제대로 밟지 않았다는 점도 논란이 됐다. 이에 ‘시국선언을 이용해 물타기를 시도한다’, ‘총학이 지나치게 한쪽의 정치적 입장만을 반영해 대표성을 상실했다’는 등의 학생들의 지적이 이어졌다. 이에 고려대 총학은 참가자 명단을 뺀 웹자보 수정본을 올렸지만 캐치프레이즈는 수정되지 않아 총학생회장 사퇴 서명운동까지 이어졌다.
 
  한편 총학생회가 ‘정치적 중립’을 표방하며 시국선언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 경우도 있었다. 인제대 총학생회는 “학생회 이름으로 시국선언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적 선동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시국선언을 진행하지 않았고, 울산대도 “시국선언 진행이 모든 학우의 의견이 아닐 수 있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다. 결국 인제대와 울산대에선 학생회가 아닌 1,000명이 넘는 학생들의 자발적 연서명을 통해 시국선언이 이뤄졌다. 배재대는 400명이 넘는 학생이 서명을 통해 총학생회에 시국선언을 요청했으나 총학생회는 정치적 중립 훼손을 문제 삼아 이를 거절했다. 이에 배재대 역시 총학생회 없이 학생들의 연서명을 통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겠다며 현재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일시적인 시국선언으로만 머물러서는 안 돼
 
  학생사회 내부에서 논란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전국 100여 개가 넘는 대학이 시국선언에 참여하는 활발한 흐름 속에서 개별적인 행동을 넘어 연합체를 구성해 공통된 목소리를 내려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지난달 30일(일) 전국 대학 학생회 30여 곳과 ‘416대학생연대’, ‘청년하다’ 등 학생단체가 모여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를 결성했다. 이들은 산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각 대학별 시국선언의 흐름을 전국 단위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커지며 대학가에선 시국선언의 불길이 전국적으로 확대됐고, 학생들은 ‘민주적 주권자’로서 시위에 참여해 정권 퇴진을 외쳤다. 대학 간 연합체를 구성해 개별 대학의 목소리를 하나로 묶어 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대학생의 목소리가 대학 안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사회와 결합해 유의미한 정국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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