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제국주의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슬픔을 안겨주었다. 인도차이나 반도까지 진출한 일본군은 태국을 넘어 미얀마까지 넘봤다. 그들은 군수품을 안정적으로 수송하기 위한 도로와 다리가 필요했고, 전쟁 포로들은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일본군의 침략을 위한 인프라 건설에 동원되었다. 포로들이 혹독한 인권 유린에 탈진하여 죽어가면서 만든 ‘죽음의 철도(Death Railway)’의 일부는 이제 관광지가 되어 방문객들에게 2차 대전의 참상을 알리고 있다. 전쟁 포로 6만여 명, 인도차이나 반도의 전역에서 강제로 끌려온 노동자 20만여 명이 동원되었는데, 이 중 11만 6천여 명이 영양실조, 질병과 부상으로 사망하였다고 하니 일본이 주장한 허울 좋은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은 참으로 사악한 생각이며 행동이었다. 특히 ‘콰이 강의 다리’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는데, 길지 않은 이 다리 건설에만 수천 명의 미군이 죽었다고 한다. 외국 관광객들은 콰이 강 위에 비극적으로 건설된 다리에서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사진 찍기에 바쁜데 과연 역사의 상흔(傷痕)을 얼마나 알고 있을지. 십여 년 전 조류 독감이 창궐하여 수천만 마리의 닭을 살(殺)처분한 태국의 서부도시 깐차나부리에 도착하여 여행을 시작한다.

  억울한 사람들의 원혼(冤魂)과 살처분된 닭들의 영혼이 뒤엉켜 상당히 우울할 것 같았던 나의 예상과는 달리 도시는 청명하고 온화했다. 모든 사람들이 망각한 역사적 사실을 유유히 흐르는 강물만이 아우르는 듯 고요하기까지 했다. 자전거 인력거를 타고 숙소를 찾다가 강물 위에 떠 있는 방갈로에서 묵어보기로 결정했다. 흐르는 물살에 약간의 흔들림은 있었지만 흔들림 자체가 나에겐 큰 낭만이었다. 정글하면 아프리카나 남미의 아마존 일대를 생각하게 되는데 인도차이나 반도에도 이국적인 정글은 많다. 내가 있는 곳은 정글을 가로지르는 콰이 강에 부유(浮游)해 있는 방갈로. 도착한 첫날은 벌레 소리와 물결 소리에 취하며 잠에 빠져들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선한 공기와 물, 그리고 숙면이라고 생각한다. 실로 오랜만에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숙면을 취했다. 성경에서 가장 오랫동안 산 사람은 므두셀라인데 그는 969년을 살았다. 매일 이런 숙면을 취하면 난 므두셀라보다 더 오래 살 것 같은 이 뜬금없는 기분은 무엇인지.

 

▲ 콰이 강의 다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이다.

 두 번째 날은 현지인들의 추천을 받아 에라완 폭포에 가보기로 했다. ‘에라완’이란 머리가 세 개 달린 코끼리 신을 의미한다고 한다. 태국인들이 신성시하는 코끼리의 머리가 세 개나 된다니 범상치 않다. 깐차나부리의 저편에서는 채찍으로 맞아가며 정글 트레킹에 혹사 당하는 코끼리가 있는데, 이 폭포를 포함한 많은 곳에서는 코끼리의 이름이 칭송되며 사용되는 현실에 잘 적응이 안 된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성속일여(聖俗一如)일까. 불교에 대한 지식이 낮은 나로서는 더더욱 이해하기가 어렵다.
잘못된 생각으로 벌어진 전쟁의 참상을 목도하고 모든 것을 용서한 강의 넓은 마음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에게 깐차나부리 여행을 권한다. 여행은 우리에게 즐거움도 주지만 교훈과 더 공부해야겠다는 다짐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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