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운동사의 신기원, 숭연전(崇延戰)
한국 운동사의 신기원, 숭연전(崇延戰)
  • 한명근(한국기독교박물관 학예사)
  • 승인 2016.11.21 17:42
  • 호수 11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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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8년 10월 15일 맑은 가을하늘의 아침, 평양에서 출발한 열차가 신촌역에 서자 플랫폼에 정렬한 연희전문학교 악대가 숭실 교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경성역으로 오는 대규모의 숭실 군단을 환영하기 위한 이른 아침의 행사였다. 매퀸 교장은 수학여행을 겸해서 숭실전문학교 학생들을 이끌고 경성역에 도착, 당당한 보무를 내딛었다. 관철동에 있는 신행여관에서 여장을 푼 숭실 학생들은 다음날의 일전에 대비해 몸을 만들었다.

  10월 16일과 17일에 걸쳐 한국 스포츠 역사의 신기원이 된 숭실전문과 연희전문간의 대교(對校) 경기가 치러졌다. 당대 조선을 대표하는 학교 간의 애교심 함양, 친선교류를 목적으로 운동경기가 치러진 것이다. 미국의 하버드대학과 예일대학 간의 미식축구, 영국 옥스퍼드대학과 캠브리지대학 간의 조정경기가 있듯이 조선에서는 숭연(崇延)전이 있었다.

  두 학교 간 대항전은 경기 종목, 방식, 장소, 소요 예산 등 대두된 현안 문제를 수년 간 협의해 오다가 마침내 연 2회 상호 방문하여 경성과 평양에서 치르고 경기 종목을 축구, 농구, 정구로 채택했다. 동아일보사의 후원으로 추진된 제1회 대항전은 연희가 숭실을 초청해 경성에서 이틀간 펼쳐졌다. 뜨거운 열기 속에 첫날 농구와 정구 경기가 치러졌다.

  이튿날 대망의 축구경기가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개최됐다. 입장료 무료로 수천 시민과 함께 한 경기였다. 신장과 체력을 앞세운 연희군과 체격은 왜소하나 기교와 전술이 뛰어난 숭실군의 막상막하의 혼전으로 치러졌다. 치열한 접전 끝에 숭실군은 3 대 2로 패배하여 평양에서의 복수전을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학원 스포츠의 기념비적인 양교의 대항전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아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현재는 대학 스포츠의 대표적인 대항전으로 연고전(고연전)이 주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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