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숭대시보 기사에 의하면 기업인이 보는 숭실대 졸업생들의 가장 모자란 점은 영어 능력과 자신감이다.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몇몇 영어 교과 교수들의 이야기에 머리끝이 쭈뼛 섰다. “이렇게 수준 낮은 학생들에게 영어를 어떻게 더 수준 높게 가르치라고, 무슨 커리큘럼을 어떻게 바꾸라는 소리냐? 어떤 식으로, 뭘 하라고 우리를 괴롭히느냐?” “한글로 된 글쓰기도 못하는 학생들에게 영어에 투자하게 하는 것이 효용성이 있느냐?”란다. 본교에서 수년 혹은 십 년 이상 가르친 교수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들이 학생들에게 이러한 태도를 가졌었단 말인가?  

  “우리 학생들은 뭘 해도 예쁘다. 잘해도 예쁘고, 잘 못하고 나서 인정하고 사과해도 예쁘다”며 부모 마음으로 가르치던 교수들만 보다가 이러한 동료들을 만나니 도대체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 본인이 교수라는 생각으로 혹은 “영어 우월감”으로 학생들에게 행하는 갑질은 아닐까? “영어를 못하니 내 수업에 와서 흥미를 갖고 더 잘하도록 잘 가르쳐야지”라는 교육자로서의 자성은커녕 자신의 게으름과 편견을 학습자 탓으로 전가시키고 적당히 책임 시수만 메우려는 이 태도는 비선실세 국정농단에 꼭두각시 춤을 추며 부당한 학점을 부여하는 타 대학 교수들의 행위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영어를 잘하는 학생이 결국 A+를 받을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과목은 교육의 본질을 훼손하고, 금수저를 물고 있는 학생들에게만 유리한, 반에서 꼴찌인데도 말 타서 좋은 대학 가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국가가, 권력이, 정치가 우리를 힘들게 하더라도, 학생을 가르치는 내 위치에서 교수로서 공정하고 객관적인 학점을 부여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어떤 외압과 탄압에도 교수라는 업을 지닌 사람들이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정언 명법인 것이다. 영어 수업일지라도,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며 기본을 지키고 동료들과 어우러져 양보하고 화합할 줄 아는 태도가 최우선으로 우대 받아야 한다. 영어는 타고난 능력이 아니다. 좋아하게 된 어느 시점부터 잘하게 되고, 그로 인해 자부심과 자신감 향상을 느낄 수 있는 놀라운 과목이다. 이 경이로움을, 내가, 숭실대가, 학생들에게 느끼도록 해 주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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