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가 왜 그랬지?’, ‘왜 나에게만 이런 불행이 오는 걸까?’ 자신의 삶을 천천히 되돌아보면 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 지우개가 글씨를 쉽게 지우듯 나쁜 기억 지우개가 내 나쁜 기억을 지워주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이는 불가능하다. 어차피 못 지우는 기억, 속 시원히 털어놓고 맘속 응어리라도 조금이나마 풀어보자.

  중학교 2학년 때 영어를 잘하지 못했는데 얼떨결에 영어발표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대회에서 나는 문법을 하나도 지키지 않고 말을 했고 대본을 다 외우지도 못했으며 심지어 자료조사도 부실했다. 무언가를 완전히 망쳤던 기억….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식은땀이 난다.

박종범(행정·15) 군
 
  어릴 적 친할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한번은 할머니와 다투어서 내가 들고 있던 빗자루를 할머니께 던졌던 적이 있다. 2년 전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는데 만약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절대로 할머니께 빗자루를 던지지 않을 것이다. 할머니께서 살아 계실 때 잘해 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죄송하다.
변하은(사회복지·15) 양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아서 올해 여름 방학에 한 달간 친구와 같이 놀이공원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 6일 근무라서 친구와 가족들을 만날 수도 없었고, 편도염에 걸렸으며, 땡볕 아래에서 일하면서 얼굴은 화상을 입었고, 고객들의 갑질은 상상초월이었다. 돈은 얻었지만 몸과 마음을 버린 아르바이트였다.
신예규(정보사회·15) 양
 
  초등학교 2학년 때 하교하는데 뒤에서 내가 제일 싫어했던 남자애가 따라오고 있었다. 전속력으로 도망치다가 넘어져 앞니가 부러졌고, 부러진 앞니는 하수구에 빠져 버렸다. 주변에 있던 고학년 선배들이 나를 업고 보건실에 데려갔다. 그 앞니 영구치였는데….
박찬주(경영·15) 양
 
  중국에서 유학 생활을 3년 정도 하다가 한국에 와 숭실대에 오게 되었다. 이후 이번 여름 방학 때 어학 공부를 하러 다시 중국을 갔는데, 가는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이유도 없이 공포감이 밀려오더니 숨을 쉬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나는 이미 중국에 도착해 있고 호흡기를 차고 있었다. 그 이후로 지금도 가끔 숨이 막히고 못 견디는 순간이 찾아오는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때 중국을 안 갔더라면 겪지 않을 일이었을 텐데….
익명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딱 떴는데 수업 시간이 한참 지나 있었다. 허겁지겁 학교까지 뛰어가 조심스레 뒷문을 열고 몰래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교수님께 한참을 혼났다. 내 대학 생활 중 가장 창피했던 기억이고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최재영(국제법무·13) 군
 
  초등학교 4학년 때 코피가 자주 나는 아이가 있었다. 장난기가 많던 나와 친구들은 “코 좀 그만 파”라며 종종 그 아이를 놀렸다. 그 아이가 코피를 자주 흘렸던 것은 그가 가지고 있던 병 때문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해 겨울 그 아이는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정원(벤처중소·11) 군
 
유치원 때인지, 초등학생 때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 당시 나는 한글을 잘 못 읽었다. 하루는 엄마가 거실에 나를 앉혀 놓고 한글나라 책으로 글을 가르쳐 준 뒤 다시 읽어보라고 시켰는데 나는 잘 읽지 못했다. 화가 난 엄마는 옆에 있던 리모컨으로 나를 때렸고 하필 무릎뼈에 맞았다. 그렇게까지 할 생각이 아니었던 엄마도 당황하고 나는 아파서 소리도 못 내고 울었다. 이 기억만큼은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나윤지(법학·14)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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