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4월 20일, 문과 중심의 숭실이 부속교육기관으로 농과강습소를 개설했다. 농업 인구가 전체 국민의 90%에 달했던 때였다. 숭실은 일찍부터 문과 중심의 기독교적 심성을 가진 인재 양성에 주력하였고 이과와 실업과를 개설하여 근대사회에서 요구되는 인재 양성에도 힘썼다. 농과강습소 개설은 실용 교육의 구체적인 발현이었다. 당시 관공립의 농업학교는 기술적인 관리 양성을 목표로 삼고 있었던 데 반해, 숭실은 농업 기술자이면서 농촌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갈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목표로 농과강습소를 부설한 것이다. 

 

  숭실은 농과강습소가 상당한 진전을 보임에 따라 1931년 2월 28일 정식 농학과로 승격시키기 위해 총독부에 인가원을 제출하였다. 일주일 후 조선총독부 고시 제 207호로 숭실전문학교에 수학연한 3년, 정원 30명 규모의 농학과 신설이 정식으로 인가되었다.
 
  농학과가 출범하면서 미국에서 농촌경제학을 전공한 농학박사 이훈구를 농과 과장으로 초빙하고 큐슈제국대학 출신 김호식, 교토제국대학 출신 김응용, 도쿄제국대학 출신 명재억 등 명망 높은 학자들을 전임교수로 초빙하였다. 이와 함께 학교 구내에 농기구실, 퇴비장 계사(鷄舍), 양잠실, 온실과 사무실 등을 마련하고 농학과 실습장으로 평양부 외곽에 양돈과 양잠 실습지, 과수(果樹)와 수전(水田)의 실습장 8만여 평을 확보하였다. 그리하여 농학과는 농업에 관한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갖춘 농촌 지도자를 양성하는 고등교육기관으로 발돋움하였다. 
 
  당시 언론도 앞다투어 숭실의 농학과 설립에 주목하며 농촌사회에 공헌하기를 기대하였다. 『동아일보』는 1931년 3월 8일자 ‘농과 전문 설립, 공헌이 많기를 기대’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숭실이 앞으로 농업 기술자뿐만 아니라 농민의 권익을 옹호하는 농민 운동의 지도자를 양성하여 농촌 경제와 농민의 생활 증진에 기여하는 인재들을 배출할 것을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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