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덮었을 즈음에 삶을 돌아봤다. 앉아있던 자리와 그날의 아침식사를 떠올렸다. 또 그보다 훨씬 이전을 기억했다. 무더운 여름날 놀이터에서 만졌던 흙더미, 그 흙으로 어떤 미래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했다. 청청한 가을날 밟아 흐트러진 낙엽이 어떤 미래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했다. 20살의 세월 동안 어떤 금을 만들어 왔을지 생각해 봤다.


   고향을 떠난 날엔 드디어 무엇을 원하는지 보이게 됐다. 지금까지 맡아본 적 없는 새로운 향을 맡아 비로소 안 것이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한 노동을 했다. 어떤 것에 닿기 위해 수없이 걸었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풍경을 발견했다. 그렇게 새로운 언어를 만났다. 언어는 곧 만물이며 만물이 언어다.


   어느 척박한 땅에 도달한 누군가는 난생 처음 경험하는 말과 처음 경험하는 흙색 손길에 당황을 면치 못하겠지만 그 또한 끝이 아니다. 도기그릇에 비친 제 모습을 뒤로 하고 바닷가로 떠나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겠지만 어쩔 수 없으며 또한 언젠가 돌아봤을 때 귀중한 선택이 될 것이다.


    척박함을 넘어서 갈라짐의 끝, 토양이나 토지보다 모래의 산이란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장소로 도착했을 때 그는 지팡이를 짚고 허리를 굽힌다. 태양은 내리쬐고 그의 피부는 아마 그 옛날 처음으로 경험했던 흙색이다. 그렇게 도착한 땅에선 또다시 난생 처음으로 갖은 폭력과 대면한다. 그 억척스러움에 차마 맞서지 못하고 모든 것을 빼앗긴다. 그러나 그렇게 빼앗긴 뒤로 혼자 남았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마치 정신없이 읽어오던 책이 마지막을 고해 애잔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덮는 일처럼.


   책을 덮으면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생각해 본다. 노동과 사막 그리고 양을 치는 것, 그 얼마나 다른 일일지. 또한 이 순간도 마찬가지다.


   슬픈 일이 있는 날엔 종종 이 책을 떠올리곤 한다. 그럼 다시 슬픈 마음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수많은 내일과 어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을 금속처럼 연금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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