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맥주는 최고의 술이다. 와인은 많이 마시고 공부도 해봤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고 소주는 너무 독한데다가 왠지 ‘철학’이 없어 보인다. 실명을 거론할 수는 없지만 잘 아는 연예인 선배는 “와인은 말 오줌 냄새가 나서 싫다”고 한다. 내가 소주에서 영안실 냄새가 난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맥주는 어렵지도 않고 ‘빈티지’를 따지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지역마다 각기 다른 품종을 논하지 않아도 된다. 더구나 곁들이는 음식으로 값비싼 치즈나 소위 ‘품격 있는 안주’가 없어도 된다. 땅콩이나 오징어만 있어도 어디서든 따서 마실 수 있다. 잔이 없다면 병째 마셔도 되고 캔에 든 것은 가지고 다니기도 편하다. 독일에서 체류한 경험이 있는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맥주 예찬론자다. 와인만큼이나 다양한 독일 맥주의 맛에 빠져 거의 매일 맥주를 물처럼 마셨던 기억이 새롭다. 맥주 값과 물 값이 거의 비슷한 독일 식당에서 물을 3유로씩이나 주고 주문하면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가급적 물대신 맥주를 주문했는데, 이것이 맥주에 심취하게 된 주요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한국의 식당에서 공짜로 주는 물이 유럽의 식당에서는 원화로 5천 원 가까이 되니 계산을 하면 쉽게 마실 수가 없다. 유럽의 야박한 ‘물 인심’이 나를 강력한 맥주 애호가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아시아 맥주 중 단연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칭다오 맥주’의 고향 칭다오(靑島)에 도착했다.


  1898년 칭다오는 독일의 조계지(租界地)로 개항했다. 독일인들은 독일풍의 건물도 남겼지만 그들의 맥주 제조 기술도 이 도시에 고스란히 전했다. 전 세계 도시의 구석구석에 포진한 ‘차이니즈 레스토랑’에서 판매되는 칭다오 맥주가 탄생한 것이다. 물이 좋기로 유명한 칭다오에서 생산된 맥주는 세계인의 입맛을 금방 사로잡게 되었다. 그리고 칭다오는 세계 4대 맥주 축제가 열리는 유명도시로 거듭났다. 편견인지는 모르겠지만 독일인들이 진출한 곳에는 맥주 문화가 생겼는데 왜 일본인들이 상주하는 곳에서는 집창촌이 생겼을까. 국가 이미지는 잘 변하지 않음을 실감하고 역사는 언제나 누군가의 행위를 냉엄히 평가한다는 믿음이 더 강해진다. 칭다오는 독일 이후 일본의 지배를 받다가 1922년 중국 정부에 회수되었다.


  낮에는 사상가 루쉰(魯迅)이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지었다는 루쉰 공원을 둘러보고, 지두지아오후이(基督敎會)같은 독일인들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해가 진 후에는 바다 위에 건축된 잔차오(棧橋)에서 은은한 칭다오의 야경을 즐겼다. 칭다오에 사는 중국 친구와 여러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해산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 도시의 진미(珍味)를 맛봤다. 밤새 마셔도 계속 들어갈 것 같은 맥주의 풍미(風味)는 아마도 산둥 반도 전체를 휘감을 거 같은 맥주 향기에서 나오는 것은 아닐는지. 외국 언론인에게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고 혹평 당했던 한국 맥주의 분발을 겉으로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외쳐댔다.


  맥주 말고도 볼 것이 많고 역사적으로도 공부할 것이 많은 이 도시에서 맥주 이야기만을 늘어놓는 나를 발견하고 맥주에 대한 확고한 애정을 다시 확인했지만, 계속 마시다가는 간에 무리가 가서 건강을 잃을 수 있다는 염려에 빠진 다소 약해진 나를 발견한 2016년의 마지막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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