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다형 문학상 소설 부분에 20여 명이 투고하였다. 문예창작전공 수강생이 주류였고 거기에 끼어든 비전공 학생은 오랜 시간 한 우물만 판 그들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아쉬움도 없지 않다. 모두에게 개방된 행사가 특정 전공만의 잔치가 된다면 그 취지와 가치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어떤 분야를 전공하든 간에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야기를 꾸미고 인물을 창조하는 정신은 이 시대가 간절히 요구하는 창의성에 부합된다. 이러한 창조적 체험에 많은 이들이 동참하는 조건과 분위기를 만들어야 줘야 한다. 문학적 성취도와 무관하게 학생들이 밤새워 쓴 글은 모두 옥고(玉稿)이다. 창조를 독려하고 옥고를 소중히 다루고 공정히 대우하는 것은 주최자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의무이다. 저간의 사정은 모르겠으나 금년 주최 측의 수준은 투고자의 그것에 훨씬 뒤떨어졌다.

  투고작 중 이주현의 「겨울방학 계획」, 최민규의 「철구(鐵球)」, 그리고 권누리의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고」가 눈길을 끌었다. 세 작품 모두 지금 젊은 세대가 겪는 아픔을 다루었으나 그 아픔의 원인을 대놓고 호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통을 해석하고 표현하는 방식에서 각자의 개성과 노력이 발휘되었다. 권누리는 사회에서 용인되지 못하는 성 소수자들의 삶을 그렸다. 남의 눈길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터라 그들의 언어와 몸짓이 조심스럽고 섬세했다. 내면화된 감시의 눈길에 억눌린 인물을 묘사하는 권누리의 글은 깔끔하고 섬세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답답증에 시달리는 「철구」의 화자는 이 땅을 떠나는 쪽을 택해 일본에서 겪은 독특한 체험을 서술했다. 그의 글은 선이 굵고 진중하고 제목만큼 묵직한 쇳덩이에 응축되었다. 그 은유가 흥미롭고 곱씹을만하다. 앞선 두 작품보다 이주현의 주인공이 겪는 문제는 일견 가장 심각하다. 그런데 머리에서 버섯이 자라는 희귀질환을 앓는 화자의 말투는 오히려 정중하고 유쾌하며 심지어 남의 어려움도 껴안는 넉넉함을 지녔다. 내 고통의 산물인 버섯이 가족의 생계 수단이 되고 남을 즐겁게 하는 음식, 심지어 건강식이 된다는 설정이 매우 도덕적이지만 그 화법이 고리타분하지 않다. 또한 윗사람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을 취한 덕분에 경어체인 그의 글은 시종일관 예의를 잃지 않았다. 세 분 모두에게 건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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