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가에는 ‘창의‧융합교육’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인문사회계열 학생이 소프트웨어 및 IT 관련 교육을 받거나 이공계열 학생이 인문학 수업을 듣는 기초적인 수준에서부터 학과 간의 장벽을 없애기 위해 △융합전공제 △전공선택제 △유연학기제 등의 새로운 학사제도를 도입하는 수준까지 다양한 방식의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이는 곧 찾아올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등 정보통신기술이 주도할 차세대 산업혁명인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즉,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다양한 전공 지식과 문제해결능력이 필요하며 그에 맞게 각 대학은 학생들에게 새로운 교육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학가 전반에 걸쳐 교육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기업과 대학, 정부 대표 2,000여 명이 모인 ‘한경 글로벌 인재포럼’에서 민상기 건국대 총장은 “앞으로 혁신적인 대학교육을 통해 미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난 20일(월) 고등직업교육 정책 대토론회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대표는 “현재 정형화된 인재를 만드는 교육방식에서 벗어나려면 전 국가적인 교육 혁명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대학들, 새로운 학사제도 및 교육방식 도입 추세
 
  지난해 12월 8일(목) 교육부는 △학사제도 유연화 △창의·융합교육 확대 △이동·원격수업 △국내대학의 국외진출 제도 등의 ‘대학 학사제도 개선방안’이 포함된 ‘고등교육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는 기존의 획일화된 교육방식에선 미래사회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기 어렵다는 대학들의 요구로부터 마련된 것이다. 이번 개선안은 탄력적인 학사운영과 다양한 학습기회 확대 방안을 제도화하는 총 15개의 방안으로 구성됐다. 그 가운데 △유연학기제 △집중이수제 △융합전공제 △전공선택제 등 파격적인 제도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표 참고) 
 
  이에 각 대학들은 새로운 학사제도 및 교육방식을 도입하려는 추세다. 건국대학교는 지난 6일(월) 올해부터 학생이 직접 설계한 창의 활동에 따라 학점을 부여하는, 일명 드림학기제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삼육대학교와 대구대학교를 비롯해 몇몇 대학에서 올해부터 새로운 학사제도를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익 삼육대 총장은 “특히 유연학기제는 신입생들의 진로탐색을 위해 꼭 필요한 학사제도라고 생각한다”며 “현재 대학 내부에서 도입을 위해 검토 중이다”라고 밝혔다. 
 
  교육부가 학사제도 개선안을 발표하기에 앞서 이미 다양한 학사제도를 시행하고 있던 대학들도 있다. 아주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를 비롯한 일부 대학에선 자유학기제(도전학기제)를 운영하고 있다. 자유학기제는 한 학기 동안 기존의 수업 대신 교외에서 학생들이 원하는 활동을 자유롭게 하면서 이를 학점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이다. 그 가운데 한동대학교는 지난 2015학년도 2학기부터 국내 대학 중 최초로 자유학기제를 도입했다. 자유학기제에 참여했던 A 군은 “자유학기제의 강점은 전공과 관련해 좋은 경험을 하면서 학점까지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한 지난 2013학년도 건양대학교는 창의융합대학을 설립해 다학기제를 도입했다. 이는 한 달을 1학기로, 연간 10학기를 운영하는 것이다. 10학기 중 8학기는 한 학기마다 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수업하는 모듈식 수업으로 진행되며 나머지 2학기는 전공과 관련된 전문가를 전임교수로 초빙해 응용수업을 진행한다. 이에 대해 건양대학교에 재학 중인 B 양은 “한 과목을 집중해서 공부한 후 다음 학기로 넘어가는 방식이기에 몰입도가 높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학습하게 돼 성취감도 크다”고 말했다. 
 
무리한 학사제도 개편, 대학 내에 혼란만 야기해… 
 
  반면 교육부는 올해 2월까지 시행령 개정을 완료해 이번 학기부터 학사제도 개편이 이뤄지도록 할 계획이다. 이에 따르면 각 대학들은 올해 1학기에 학칙 개정을 완료하고 2학기부터 새로운 학사제도를 본격 운영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일부 대학에선 올해부터 당장 새로운 학사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를 도입하려면 지금까지 운영돼 오던 각종 행정체계를 변경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각 대학의 특성에 맞는 교육 내용을 구성해야 하는데 그만큼의 시간과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어 교육부가 내놓은 학사제도 개선안을 바로 수용하기엔 다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는 지난 1월 기자회견을 열어 “교육부가 내놓은 학사제도 개편은 그럴듯한 취지와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으나 대학의 특성이나 지역에 따라 일어날 부작용은 전혀 고민한 것 같지 않다“며 교육부의 학사제도 개선안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박성수 교육부 학사제도 과장은 “이번 학사제도 개편안은 서울총장포럼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등의 건의를 통해 실시한 연구 2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으며 무려 6개월간 준비해 온 정책”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무리하게 학사제도를 개편해 행정체계에 혼란을 겪은 대학도 있다. ㄱ 사립대는 1년을 10주의 3개 학기와 8주의 계절학기로 구분하는 ‘3학기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는 2년 만에 폐지됐다. 해당 대학과 교류를 맺고 있던 타 대학들은 모두 2학기제로 운영되고 있어 공동 연구 및 학점 교류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는 충분한 연구 및 시범기간 없이 무작정 학사제도를 개편하면서 발생한 결과이다.  
 
창의·융합교육은 급부상 … 기초학문은 위축
 
  또한 최근 창의‧융합교육이 대학교육을 선도하면서 인문학과 자연과학 등의 기초학문이 학생들에게 다시금 외면 받을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날이 갈수록 취업 경쟁이 심각해지고 기업에서마저 IT 및 상경 계열 전공자를 선호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주 관심사는 취업이다. 2016 상반기 20대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4년제 대학 입학생 7명 중 1명이 취업에 유리한 상경계열이었으며 전체 입학생 중 14.5%가 경제‧경영학과를 선택했다. 또한 취업률을 중심으로 대학평가와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경영‧경제‧행정‧언론 등 실용학문 위주로 학과들이 신설되고 있다. 
 
  이에 더해 새로운 학사제도와 여러 가지 전공이 합쳐진 융합교육이 실시돼 학과 간 장벽이 낮아진다면 기초학문은 결국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이 일고 있다. 이에 서울 소재 ㄴ 사립대 교수는 “취업 위주로 학과·전공을 조정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학생들의 수요가 없는 학과를 통폐합시키는 기존 프라임사업을 한층 심화하는 형태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대학들, 미래를 향한 교육의 방향성 논의 중 
 
  한편 각 대학들은 학사제도 개편에 이어 미래사회에 적합한 대학교육의 방향성을 고민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무엇보다 개개인의 특성에 맞춘 개별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에 대표적으로 플립러닝 및 블렌디드러닝과 같이 학생 스스로 문제의 해답을 찾아가는 수업 방식이 새로운 교육 트렌드로 꼽혔다. 플립러닝은 강의 내용을 온라인으로 미리 배우고 강의실에선 주로 토론 및 워크숍을 진행하는 수업방식으로, 일명 거꾸로 수업이라고 불린다. 이는 지난 2012학년도 울산과학기술대학교와 카이스트를 시작으로 서울대와 연세대 등 여러 국내 대학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지난해 9월 한양대학교에서 ‘학습혁명의 시대: 블렌디드러닝, 플립러닝의 실천과제’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또한 진정한 융합을 위해 타인과 소통하고 협력하는 능력을 기르는 ‘리더십’ 교육의 필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지난 1월 23일(월)에 열린 ‘2017 대한민국 미래교육포럼’에서 이현청 한양대 석좌교수는 “미래 사회에서 인공지능 등의 첨단기술이 일상화된다면 지금의 획일적인 한국의 교육시스템으론 첨단기술을 따라갈 수 없다”며, 이어 이기천 고려대 교수가 “앞으로는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특성인 인성과 창의성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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