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을 고민하는 기로에 선 이동건 선수와의 인터뷰

  22일 송파구의 한 클라이밍 센터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강사로 일하는 이동건 선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 선수는 16년간의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 생활을 접으려 하고 있었다. 이 선수는 아쉬워했지만 담담했다. 그도 한때는 경기에 욕심을 냈고 상대를 이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 이 선수에게 중요한 것은 스포츠 클라이밍을 즐기는 것. 복귀와 은퇴의 기로에 선 그와 그동안의 선수 생활을 돌아보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릴게요. 현재는 선수직을 잠시 쉬고 있다고 들었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이동건: 저는 28살인 이동건이라고 합니다. 숭실대학교 생활체육학과(현 스포츠학부) 09학번이에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 클라이밍 선수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다친 상태라 스포츠 센터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는 강사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은 제가 수술을 앞두고 있어 향후 계획은 명확하지 않지만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할 것 같아요.
 
 스포츠 클라이밍이란 어떤 스포츠인가요?
 
  이: 산에서 바위를 타던 것에서 유래했어요. 실내에서도 등반을 할 수 있도록 이런 조형물을 만들면서 스포츠 클라이밍으로 불리기 시작했죠. 
 
  정식 종목은 세 가지가 있어요. 스피드 경기와 리드 경기, 볼더링 경기가 그것이에요. 스피드 경기는 15m의 코스를 먼저 올라가서 정상의 터치판을 치는 시간을 기록해 점수를 내요. 경기하는 코스에 대해 국제적으로 조건이 정해져 있어요. 홀드(인공암벽을 오를 수 있도록 벽에 붙인 돌 모양의 인공 구조물)의 위치, 방향, 모양 등이 전 세계적으로 동일해요. 
 
  리드 경기는 높이가 보통 15~18m 정도의 벽을 더 높이 올라가는 사람이 점수를 가져가는 종목이에요. 매 대회마다 루트 세터들이 임의로 경기 코스를 설정하면 그곳에서 경기가 치러지고 예선, 준결승, 결승전을 거쳐 가장 많이 올라가는 사람이 좋은 성적을 받죠. 보통 홀드를 몇 개 잡느냐로 성적이 갈린다고 볼 수 있어요.
 
  마지막 종목은 볼더링이라는 종목인데 제가 주로 이 종목의 경기에 나가요. 높이가 5~6m 정도인 벽에 안전장비 없이 오르는 거예요. 클라이밍용 신발과 바닥에 떨어지는 걸 대비한 매트를 제외하곤 아무런 장비가 없어요. 리드 종목의 홀드가 대략 60개 정도라고 한다면 볼더링 종목의 홀드는 적게는 4개, 많게는 12개 사이예요. 한마디로 어려운 난이도의 코스를 짧게 완수하는 거라고 볼 수 있죠. 
 
스포츠 클라이밍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께서 취미로 스포츠 클라이밍을 시작하셨어요. 그 전에는 산 타는 것을 좋아하셨고요. 당시에는 주로 산을 타시는 분들이 겨울에는 춥고 산에 자주 갈 수 없다 보니 실내에서 연습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버지께서도 마침 집 가까운 곳에 클라이밍 센터가 있어서 저와 형을 데리고 가신 거죠. 그때 처음 스포츠 클라이밍을 접했어요.
 
  어릴 때는 그저 매달리는 게 재미있었어요. 어린 아이들은 대부분 매달리는 걸 좋아해서 선반이나 냉장고를 잡고 올라가곤 하잖아요? 어려운 코스를 올랐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매달리고 버티면서 제가 생각한 대로 몸을 다룰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던 것 같아요.
 
  학창시절에도 거의 운동을 하면서 지냈어요.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매일 센터에서 운동을 했고, 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도 갔어요. 당시 제가 갔던 한양공고에는 산악부가 있었거든요. 
 
처음 대회는 어떻게 나가게 됐나요? 그리고 그 대회에서 어떤 결과를 얻었나요?
 
  이: 사실 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센터에 계신 선생님께서 대회에 나가보지 않겠냐고 권유하셨어요. 당시에도 초등학생들을 위한 대회는 있었지만 참여하는 선수가 적었어요. 일반적으로 스포츠 클라이밍 대회가 열리면 초등학생들을 위한 초등부 경기가 따로 열리거나 어린 아이부터 고등학생까지 통합한 학생부 경기가 열리곤 해요. 저의 첫 대회는 학생부 경기였고 리드 경기였어요. 당시 볼더링 경기가 국내에 거의 열리지 않았거든요. 
 
  첫 대회를 나가선 꼴찌를 했어요. 떨어지는 것이 너무 무서웠어요. 살짝 뛰어내리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하지 못해서 제한시간까지 계속 매달려 있다가 결국 로프를 착용한 상태에서 밑에서 내려줬죠. 당시 4개월밖에 운동을 하지 않았고 별 생각 없이 운동을 즐겼기 때문에 제대로 경기를 준비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두 번의 부상을 입었다고 들었어요. 어쩌다 부상을 입고 경기에 나가지 못했나요? 또한 그렇게 됐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이: 스물한 살에 양쪽 어깨를 모두 다쳤어요. 어렸을 때보다 키도 크고 몸의 중량이 늘었는데 여전히 가벼 웠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운동했던 게 실수였어요. 당시 경기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기도 했고요. 마침 혼자 운동할 때였는데, 제어해줄 사람도 없고 스스로 모든 일정을 짜서 소화하다 보니 무리를 한 것 같아요.
 
  어깨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그 병원에서는 제가 다친 곳을 파악하지 못했어요. 두 번째로 간 병원에서는 어깨 인대가 끊어진 것을 발견하곤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사실 한 번도 크게 다친 적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다친 거라 많이 괴로웠죠. 경기를 최소 일 년간 뛰지 못하고 훈련도 받지 못하고, 회복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니까요. 수술을 마치고 재활치료와 가르치는 일을 병행하다가 다행히 다시 경기에 복귀할 수 있었고 경기를 잘 치렀어요. 
 
  그리고 재작년에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만 다리를 다쳐버렸어요. 이번에는 훈련 때문이 아니라 보드를 타다가 넘어졌는데, 안 넘어지려고 다리를 땅에 짚다가 다리를 크게 다쳤어요.
 
  당시 해외에 월드컵 경기 시리즈가 있었는데 준비했던 모든 일정이 무산으로 돌아갔어요. 캐나다와 미국, 유럽에서 열리는 경기에 모두 참여하려고 했거든요. 이번이 은퇴 전 마지막 경기라고 생각해서 웬만하면 경기를 다 뛰려고 했는데 결국 못 뛰었어요. 사실 두 번째 다쳤을 때는 좀 좌절했어요. 물론 제가 잘못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억울하기도 하고 심리적으로 부인하고 싶었죠. 모든 계획이 다 어긋나 버렸으니까요. 
 
슬럼프가 오진 않았나요? 
 
  이: 컨디션이 급격히 안 좋아지거나 잘 되었던 기술이 잘 안 풀리고, 그런 것들이 슬럼프겠죠? 사실 저는 슬럼프의 원인으로 심리적인 부분이 가장 크다고 봐요. 어렸을 때는 굉장히 심리적인 것들에 민감했어요. 암벽을 오르기 힘들 때는 혼자 열 받아서 씩씩거리며 홀드를 때리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화를 내도 나아지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슬럼프를 만들지 않으려고 했어요. 컨디션이 안 좋으면 운동에 대한 모든 것을 잊고 놀았어요. “운동이 안 되면 그냥 푹 쉬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했죠. 쉬었다 해도 잘 되지 않을 때는 “쉬어서 안 되는 걸 거야, 다시 하면 할 수 있어!”하고 스스로에게 말했어요. 덕분에 운동을 좋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는 열심히 안 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요.
 
  물론 인간이기 때문에 슬럼프가 왔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기억날 만큼 인상적인 경험이 아니었다는 것은 분명해요.  
 
부상에 대해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면 거의 고통이나 포기에 달관한 것 같아요.
 
  이: 사실 인터뷰하러 오시는 분들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스토리에 대해 많이 질문하세요. 그런데 저는 항상 그분들이 원하는 답변을 하고 싶지가 않아요. 저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특별히 고난을 겪지 않은 것 같아요. 그때 당시에는 큰 고난이었지만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니거든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스포츠 클라이밍뿐만 아니라 살면서 누구나 힘든 일을 겪잖아요. 특히 운동선수라면 부상을 안 겪는 사람은 없죠. 원래 나쁜 일은 뜻하지 않게 오니까요. 처음에는 내심 억울하고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나 눈물이 나기도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다 똑같은 것 같아요. 누군가에겐 신체적인 부상이, 누군가에게는 가정‧환경의 문제가 있을 수도 있죠. 무엇이 더 최악인지 따지는 건 무의미한 것 같아요. 모든 문제는 본인에게 달린 거니까요.
 
은퇴를 생각한 이유가 뭔가요? 
 
  우선 병역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어요. 다리가 다쳐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가야 한다면 우선 뛸 수 있는 경기를 다 뛰고 군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갔다 와서 복귀할 자신이 없어요. 경기에 나가기 위한 금액도 만만치 않거든요. 타 종목에 비하면 돈이 많이 들진 않지만, 제가 해외에 월드컵 경기를 나가려고 하면 대부분의 경기가 유럽에서 열리기 때문에 한두 경기를 뛰기 위해 항공료, 체류비, 차량, 렌트, 숙박비 등 최소 300만 원 이상이 들어요. 
 
  또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일정하지가 않아요. 이 센터에서도 일을 하더라도 변수가 많아요. 연습을 하다가 흐름이 끊기기도 하죠. 제가 의지가 약한 것일 수도 있지만 운동과 일을 병행하기에는 쉽지 않은 환경인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  를 구하면 연습하는 데는 더 효율적이겠지만, 벌 수 있는 돈이 한정적이니까요. 
 
  사실 운동하는 사람들은 군대에 다녀오면 선수생활이 끝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거예요. 2년이란 시간이 결코 짧지 않거든요. 막상 군대에 다녀왔는데 운동을 더 하고 싶으면 다시 경기에 나갈 준비를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현재까지는 선수를 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 같아요.
 
아깝진 않나요? 현재 선수를 하고 있는 분들 중에서도 군대에 다녀온 뒤 계속 운동을 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이: 그분들도 이런 기로를 겪었겠죠. 대회 안 나온다고 말하다가도 불현듯 다시 나오는 분들도 계시고요. 사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어중간하게 할 바에는 복귀를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사실 아깝죠. 제대로 마지막 경기도 치르지도 못하고 그만둔 상황이니 아쉽고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나죠. 그런데 아깝다고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것도 좋죠. 그렇지만 저는 이 운동을 오래 했잖아요. 경기를 위해 하고 있는 일을 모두 저버리는 것보다는 지금 하는 일이 더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거죠. 
 
스포츠 클라이밍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현재 28살인데 스포츠 클라이밍을 한 지 16년차가 됐으니까 인생의 반 이상을 이 운동과 함께한 셈이에요. 저에게는 이것이 전부예요. 어렸을 때부터 이 운동을 했고 지금도 이 운동을 하고 있고 아직도 이 운동이 너무 좋아요. 앞으로도 제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 같고요.
 
  선수로서는 좀 아쉽죠. 최고가 못 됐으니까요. 어릴 적에는 세계 대회에 나가서 우승하는 것도 하나의 큰 목적이었는데 이루지 못했어요. 가장 좋은 성적이 2014년도쯤에 중국 경기에서 14위를 한 것이에요. 가끔씩은 ‘제일 실력이 뛰어났던 중학교 때 더 많은 경기를 나갔다면 어땠을까’, ‘중간에 나태해지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쉬움이 남지만 어차피 지난 일이니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아요.
 
앞으로 바라는 점이 있다면?
 
  스포츠 클라이밍이 재미없고 힘들기만 한 운동이라는 선입견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사실 처음 센터에 와서 한 시간 동안 있으면 그중 막상 매달려 있는 시간은 5분도 채 안돼요. 더 잘 하고 싶어도 손에 안 잡혀요.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정말 힘들죠. 평소에 성인이 매달리는 근육을 쓸 일은 거의 없으니까요. 
 
  그리고 센터 중에서도 잘못된 방식을 가르쳐주거나 재미있게 가르쳐주지 못하는 곳들이 조금 있어요. 운동을 할 때는 재미가 가미되어야 하는데 그런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면 이 클라이밍이라는 운동이 재미없고 힘들기만 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겠죠. 저는 이 운동이 재미있고 다른 분들에게도 이 재미를 알려주고 싶은데 안 좋은 인식이 쌓일까봐 우려스럽더라고요. 
 
  또한 스포츠 클라이밍이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게 개선됐으면 좋겠어요. 이 센터에는 아이들도 많이 오고 60세가 넘은 여성분도 운동을 하고 계세요. 영화나 인터넷에서 보는 것처럼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스포츠 클라이밍이 취미로 굉장히 좋은 운동이에요. 도구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직접 자기 몸을 가지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활체육적인 측면에서도 좋은 운동이에요. 실제로 이 운동을 통해 재활 훈련을 하는 병원도 있어요. 만약에 관심이 있다면 가까운 곳에 가서 체험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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