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18 광주민주화운동 28주년 '광주순례단'

 

리드문 : 올해는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이 있은 지 28년을 맞는 해이다. 뜻깊은 날을 맞아 전국에서 천여명의 대학생들이 ‘광주순례단’을 꾸려 광주를 다시 찾았다. 2008년 지금의 광주는 평화롭고 조용한 도시였지만 28년 전 광주는 총탄과 피로 더럽혀져 있었다. 이 모든 것이 광주시민들과 우리 선배들의 피의 외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지난 18일(일) 광주 금남로에서 이뤄진 대학생들의 5.18재연극을 통해 피의 교훈, ‘민주화’를 느껴보자.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강한 열망과 기대·요구 - 신군부의 12.12 사태를 통한 국권 장악 - 5.17 비상 계엄령 전술 확대, 주요 도시 공수 부대 투입, 광주에도 투입”


재연극 첫 막의 배경은 1980년 5월 18일 전남대 정문. 28년 전 그날의 모습을 재연하고자 천 여명의 대학생들이 각자의 역할에 맞는 옷을 차려 입고 줄 지어 있다. ‘민주화’라는 피의 교훈이 담긴 금남로의 왼편엔 공수부대를 맡은 학생들이 총을 들고, 오른편엔 학생운동가 역할을 맡은 학생들이 ‘전두환 퇴진’이라고 써있는 플래카드를 들고 비장하게 서 있다.

 

“작전명 ‘화려한 휴가’의 진압군은 진압봉으로 구타하고 발굽으로 밟는 등 무참하게 진압하였고, 이런 무자비한 진압에 시민들은 분노하는 한편 무력감을 느끼며 피눈물을 흘리는데”


나레이션이 끝나자, 군복을 입은 학생들이 진압봉으로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시민군 역할의 학생들을 때리기 시작한다. 실제 욕설도 오가는 급박한 상황이 전개된다. 재연극을 지켜보던 한 할아버지는 예전 모습이 떠오르신 듯 공수부대를 연출하던 학생들에게 심한 욕을 하며 심지어 돌을 던지기도 한다. 학생들도 점차 재연극에 빠져들며 28년 전 당시의 선배들의 심경을 조금씩 이해해 나간다. 장난기 어린 표정들은 금새 사라지고 엄숙한 표정만이 얼굴을 메운다. ‘등록금문제’를 외치던 대학생들의 입에서 ‘계엄군을 몰아내자’라는 구호가 이구동성으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광주시민들 중 몇몇은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도청 옥상에선 애국가가 들려오는 상황에서 집단 발포. 비극적 상황에서 광주 시민은 분노와 공포를 느낀다. 도청 앞 최소 56명 사망, 500여명 총상. 광주는 왜 이런 참담한 상황에 놓여야했는가”


1980년 그 당시의 총성은 없지만 항상 듣던 애국가가 이날만은 애처롭게 울려퍼진다. 도청 앞 금남로는 공수부대 역할의 학생들이 뿌린 소화기 가루로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시민군 역할의 학생들도 폭죽과 종이뭉치를 던지며 이에 대응한다. 2008년 현재, 총칼도 탱크도 없지만 느껴지는 분노와 공포는 여전하다.

 

“시민은 시민군을 환대하고 민주주의의 참됨이 광주, 이 상황에서 탄생한다. 강간과 절도범 등 사회범죄는 사라지고 자치 능력이 실현될 수 있음을 최초로 증명한 셈. 그러나 언론은 외면, 폭도라 부른다”


2시간여 동안 진행된 재연극이 끝을 향한다. 마지막 장면은 계엄군이 광주시민들을 둘러싼 채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다. 시민역할을 맡은 학생들이 하나 둘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한다. ‘다시 5월이다’라는 나레이션이 끝나자 시민군, 광주학생, 공수부대, 전두환 등의 역할을 맡았던 모든 학생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도청 앞을 거닐기 시작한다.

2008년 5월 18일, 금남로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가 울려퍼지고 그 곳엔 전국에서 온 대학생들이 손을 맞잡고 서 있다.

 



지금의 대학생은
선배들의 ‘5월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가?


매년 5월, 전국의 대학생들이 광주를 찾는 일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일이다. 대학생들이 5.18민주화운동의 흔적들을 좇으며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고, 28년 전 선배들의 ‘5월의 정신’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화’를 위해 총칼과 탱크 앞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던 당시 대학생들의 모습은 현재의 대학생들에게도 남아있을까?

 물론 외치는 구호도 달라졌고 총칼을 들이밀던 시대는 지나갔다. 하지만 대학생들이 짊어나가야할 사회문제들은 많으며 그 심각성은 5공화국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 정부는 300만 대학생들에게 높은 등록금을 강요하고 있고 아르바이트와 취업전선에 매진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경제’에만 그들의 청춘을 투자하도록 하고 자연스레 사회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총칼만 없을 뿐 ‘민주화’에 대한 대학생들의 열망을 잠재우려던 전두환 정권과 유사하다. 또한 정부는 국민들이 사회문제에 신경쓰지 못하게 한 후, 강대국의 행정모델만을 좇고 있으며 졸속협상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실정은 고려하지 않은 채 미국의 모델을 따라 ‘의료보험민영화’를 시도하고 있고, 미국의 편의에 치중한 채 이뤄진 쇠고기협상은 이미 온 국민이 알고 있는 졸속협상이다. 이는 1980년 광주시민들을 제압하기 위해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하고 남해바다에 미항공모함 ‘커럴시호’가 상주했던 것과 시사하는 바가 흡사하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동등한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것이다.

촛불집회에 체포투입조를 배치하겠다는 것은 5.18민주화 운동을 유혈진압하던 ‘백골단’의 부활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미 현 정부의 언론통제는 그 수위를 넘었다. 방송사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정부 비판보도를 낸 언론에 법정소송을 거는 모습은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사회인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다시 오월이 찾아왔다. 1980년의 5월에 비해 2008년의 5월은 크게 나아진 것이 없다. 또한 28년 전 그 때처럼 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원동력은 300만 대학생이다. 올해 ‘광주순례단’으로 참여한 천 여명의 대학생들은 모두 이를 느꼈고 자신들의 역할에 대해 깨달았다. 홍익대 08학번 한 학생은 “매일 술 마시고 놀러만 다니는 신입생이였던 자신이 부끄럽다”며 “망월동 묘지에서 ‘민주화’를 위해 목숨바친 분들의 영정사진을 보고 ‘5월의 정신’에 대해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5.18 '광주순례단' 여정을 따라 '민주화'를 체험하다


 
천 여명의 대학생들이 지난 5월 17일(토) 전국 각지에서 ‘5.18 광주순례단’이란 이름으로광주를 찾았다. 순례단의 첫 방문지는 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해 주목을 받았던 영화 ‘화려한 휴가’의 세트장이었다. 그 곳은 계엄군 총성소리와 시민들 함성소리 등의 음향이 퍼지고 있어 시대적 상황을 현장감있게 재연하고 있었다. 또한 80년대식 버스안에 5·18민주화운동 당시의 사진을 전시해두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한 시간 뒤, 망월동 국립묘지를 방문했다. 국립묘지에는 혹독한 계엄군에 의해 죽은 희생자들뿐 아니라 통일운동, 학생운동에 관여했던 고인들의 영정도 안치되어 있었다. 망월동 구묘지는 진압군이 시민들의 시체를 내다버린 장소로, 현재 참사현장을 보전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민주화의 상징으로서 자리잡고 있다.

망월동 국립묘지에는 유난히 플래카드가 많이 걸려있었다. 그 내용은 △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추모 △정부의 언론통제 비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의료보험민영화 반대 △대학등록금 문제 등으로 다양했다. 플래카드를 본 한 학생은 “목숨을 대가로 민주화를 얻은지 28년이 지난 지금, 우리사회는 그리 민주적이지도 평화적이지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대련5.18문화제는 17일(토) 오후7시부터 전남대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전남대학교는 80년 민주화운동당시 전국의 대학생들이 집결한 장소로 28년이 지난 지금 전국의 대학생이 다시 모였다는 것은 의미가 깊다. 문화제는 △5.18광주민주화운동 영상상영 △각 지역대학 대표 발언 △5.18 관련 문화공연 △현 사회문제에 관한 영상상영 등으로 이뤄졌다.

 문화제를 마치고 순례단은 금남로를 찾았다. 금남로는 80년도 당시 광주시민들과 대학생들이 집결했던 장소로 구도청 맞은편에 뻗어있다. 그 곳에선 5.18기념 전야제가 열리고 있었다. 풍물패와 광주시민, 그리고 전국의 대학생들이 모여 해방춤을 추며 길거리를 자유롭게 거닐고 있었다. 17일 대학생들이 잠을 청한 곳은 구 도청이었다. 구 도청은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집단발포를 한 곳으로 지금은 역사유적지로 보존돼 있었다. 비록 이불도 없는 불편한 잠자리었지만 역사적 숨결을 만끽하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민주화운동의 자취를 좇으며 17일을 보낸 후, 순례단을 18일 도청 앞에서 5.18재연극을 마치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쉴틈없이 바쁘게 진행된 1박2일 일정이었지만 80년도 대학생들의 진심과 고충을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 지난 17일(토) 전국의 대학생들이 광주 망월동 국립묘지를 방문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순국하신 열사 묘지를 학우들이 엄숙하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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