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계획대로 되지 않은 것이 참 많다. 원래 세운 계획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만 된다면 인간 세상에는 갈등과 슬픔이 없어질 것이다. 보통 사람들도 아닌 수재(秀才)들이 계획한 일들이 수포(水泡)로 돌아갈 때 사람들은 신의 뜻이라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7백만 불이면 충분하다던 공사비는 14배가 늘어나 1억 2백만 불이 투입되었고, 3년이면 된다던 공사기간은 14년이나 걸렸다. 단순히 신의 뜻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다른 결과였다. 이 도시에 이 건축물이 없다면 우스갯소리로 ‘앙꼬 없는 찐빵’이 된다. 2007년 6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앞에 섰다. 오페라 하우스는 어느 도시에나 하나씩은 있지만 이곳은 단순히 오페라를 공연하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뛰어넘어 문화를 창조해내는 공간이 되었다. 건축 기간이 늦어진 것이 신의 뜻이었다면 이런 건축물을 시드니에 존재하게 한 것도 신의 뜻일지도 모르겠다.

  1973년에 지어진 건축물이 벌써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 자체가 경이로운데, 2050년에나 나올 법한 디자인이 44년 전에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내 머릿속은 어떤 식의 과장법을 사용할까를 고민하기에 바쁘다. 외계인이 홀연히 나타나 덴마크의 건축가 요른 우촌(Jørn Utzon)에게 설계도면을 주고 간 것은 아닐는지. 남대문 없는 서울이나, 에펠탑 없는 파리는 생각할 수 있어도 이 오페라 하우스 없는 시드니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과장된 호들갑이다.

  선진국의 조건은 사람들의 행동과 표정에 있다. 한때나마 백호주의(白濠主義)를 표방했던 나라였다고는 상상이 안 갈 정도로 친절한 호주 사람들이 좋아졌다. 길을 묻는 나에게 단순히 길을 알려주는 것을 넘어 오늘 같이 더운 날에는 어떤 교통수단을 어떻게 이용해야 효율적인지까지 말해주는 사람들에게 경이를 표하고 싶어졌다. 호주는 영국 죄수들이 세운 나라라고 배운 적이 있다. 그렇다면 동방예의지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왜 죄수의 후손들이 사는 나라 사람들보다 덜 친절한 것일까. ‘Water’를 ‘오타’라는 발음하는 호주 영어 속에서 ‘Water’를 ‘워러’라고 발음하는 나의 영어는 평행선을 그으며 무엇이 이들을 친절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교량의 폭이 세계에서 가장 넓다는 하버 브리지(Harbor Bridge)에서 이름만으로도 달콤하게 느껴지는 달링 하버(Darling Harbor)로 걸어올 때까지 내가 던진 질문의 답은 나오지 않는다.

  하이드 파크(Hyde Park)에 가면 음악을 틀고 살사(Salsa)를 추는 사람들, 가족들과 나와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 잔디 위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여행객들로 보이는 사람들, 그리고 시드니 인구의 14퍼센트나 된다는 아시아 사람들이 보인다. 공원에 있는 울창한 나무들은 도시를 정화시키는 피톤치드(Phytoncide)를 만들어 낼 뿐이지만 ‘큰 포용력’이 없으면 시드니는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곳곳에 산재해 있는 고풍스러운 펍(Pub)마다 각기 다른 수제맥주의 맛을 뽐내는 것처럼 시드니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맛을 만들어 가는 미항(美港)이다. 2012년 2학기부터 숭대시보에 연재한 ‘이都저都’ 칼럼의 100번째 도시는 시드니로 선정되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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