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時評)’에 대한 글 부탁을 받고 보니, 요즈음 어지럽고 혼란스런 시국과 연관하여 세상 돌아가는 ‘세태(世態)’에 대한 소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아 권력을 행사하는 자나 그 주변에 있는 자들이 부린 무소불위의 농단과 후안무치한 언행으로 인해 우리는 ‘인간이란 무엇이며, 나는 누구인가’를 새삼스레 다시 묻게 된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인간의 능력과 행동 및 태도에 관한 근원적인 물음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란 무엇이며, 해야만 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이는 ‘가능성과 한계’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가능성’은 능력의 문제요, ‘한계’는 겸손함의 문제이다. 합리론과 경험론으로 나뉜 이른바, 서구 근대의 인식론을 비판적으로 종합한 임마누엘 칸트는 ‘비판’의 의미를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탐구’로 요약했다. 이를테면 ‘이성비판’이란 ‘이성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탐구’인 것이다. 올바른 현실인식은 누구나 자신이 지닌 능력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겸허한 인식을 전제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공감할 수 있는 시대인식 또한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닫힌 세상이 아니라 열린 세상을 추구하며 살고 있다. 닫힌 세상이란 제도나 체제 유지의 이름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명단이나 목록을 만들어 입에 재갈을 물리고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어두운 곳이다. 이에 반해 열린 세상은 우리의 자유 의지가 막힘없이 펼쳐지며, 공동체의 지반 위에서 상호관계하며 소통하는 곳이다. 어떤 특정 이념과 체제의 이해관계를 위한 불통이 다반사요,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소통이란 차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고 타자를 받아들이며 공감을 전제로 하여 가능하다. 우리는 사람이 살 만한 가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소망한다. 공정치 못한 제도의 개입이나 억압의 기제는 제거되어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되, 그 한계 또한 아울러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여야 한다. 오랜 인류 역사를 통해 많은 대가(代價)를 치르고 얻은 교훈은 인간됨의 가치이다. 포기할 수 없는 인간의 권리와 자유 그리고 존엄성을 담보하는 미래를 우리는 지향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는 그저 물리적으로 자연스레 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애써 가꾸고 이루어 가는 것임을 꼭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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