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정신 영역의 오지랖인가, 아니면 내 뇌 속 어딘가에 서식하는 그악스러운 괴물들이 세운 철야 방송국이라고 해야 하나. 나와 관련된 일부터 관련되지 않은 일까지 내 머릿속에 가득하다. 오늘도 몇 시간째 정체불명의 방송을 눌러듣고 있다. 이처럼 내 생각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의식 세계 안을 거침없이 활보하며 행동, 판단, 선택과 결정이 필요한 일에 개입하기도 한다. 

  내가 가는 식당, 내가 먹는 음식, 내가 입는 옷은 자유 의지에 따라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다. 그러나 생각은 그렇지 않다. 생각에 관한 한 나는 자유롭지 못한 존재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 이것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과거 어느 시점 이전에는 내 안에 없었다. 그렇다면 언제 어떤 경로로 내 안에 들어왔으며 어떻게 내 것이 되었을까? 그때에는 없던 것이 지금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을까? 내가 내 생각의 주인일까? 이것을 스스로에게 묻는 행위는 자기 성찰과 사회 비판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몸이 건강하지 않으면 자각 증세를 보여 이상이 있다고 신호를 주지만 생각은 자각 증세가 없다. 더욱이 그릇된 생각, 내 삶을 그르칠 수 있는 생각일 경우에도 자각 증세가 없기 때문에 더더욱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생각의 좌표>를 쓴 홍세화 씨의 표현을 빌리면, 생각은 내가 자라는 동안 꾸역꾸역 들어온다. 나에게 다가오는 생각이 내 삶을 위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또는 나에게 내 삶의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것인지, 지배 세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도록 하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는 동안에도 내 안에 스며들어 왔다. 그렇기에 내 안에 생각을 집어넣는 실제 주체인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갖춰 나가면서 기존에 형성된 견고한 생각을 끊임없이 수정해서 나의 주체성을 확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자유인도 내 삶의 진정한 주인도 없다. 
 
  기존 생각을 수정하려면 자신을 끊임없이 부정하는 용기가 필요한데, 대부분의 사람은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는 용기만 갖고 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일수록 그 좋은 머리를 기존의 생각을 수정하기보다 계속 고집하기 위한 합리화의 도구로 쓴다. 사람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세계관과 가치관이 녹아 있는 내 생각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다. 따라서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것과 한국 사회의 구성원인 내 생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은 하나에서 만난다.
  
  <생각의 좌표>의 부제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이다. 사유하는 인간으로서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 여러분이 한 번쯤 숙독(熟讀)할만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분도 스스로에게 동일한 질문을 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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