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차 촛불집회와 제15차 태극기집회에 가다

  지난 3월 1일(수) 세종대로 사거리는 하얀 태극기를 든 인파로 가득했다. 마치 일제강점기 당시 3.1운동의 현장을 직접 보는 듯 했다. 그러나 이날 세종대로 사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은 태극기에 노란 리본을 매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었다. 이들은 경찰차벽을 가운데 두고 탄핵찬반에 대한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이날 오후 2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이하 탄기국)는 탄핵 반대 시위인 일명 제15차 태극기집회를 열었고 이에 맞서 오후 5시에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 운동)이 주최한 박 대통령 퇴진 운동인 제18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해 있는 가운데 각 집회의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고 두 집단의 갈등 양상은 더욱 두드러졌다. 본 기자는 이날 열린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에 직접 참여해 그날의 현장을 담아내고자 했다.

 

   
   
 

   태극기집회의 현장 … 일부 욕설과 고성 계속 오고가

  지난 1일(수) 오후 2시, 태극기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2호선 시청역에서 내렸다. 이미 지하철 개찰구 단말기 주변은 태극기를 든 중장년층 어르신들로 꽉 차있었다. 어르신들 손에 들려진 태극기와 등에 맨 배낭, 성조기가 그려진 모자는 마치 전쟁에 출전하기 전 온몸을 무장한 군인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그들이 집회에서 든 성조기는 한국과 미국 간 동맹의 굳건함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반미’를 주장해왔던 촛불시위에 반발하기 위함이다.

  시청역 2번 출구로 나오는 데까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바깥으로 나오기 전까지 곳곳에선 승리의 의지를 다지는 고성이 오갔다. 출구를 빠져나오니 태극기와 각종 홍보지를 나눠주는 사람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얼른 태극기를 받기 위해 태극기를 나눠주고 있던 중년 남성에게 다가갔다. 그는 젊은 학생이 좋은 일을 한다며 내 손에 태극기를 쥐어 주었고 코트 옷깃에 태극기 모양의 배지를 손수 달아 주었다. 심지어 그는 집회에 참여한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카메라를 들이댔다. 길게 이어진 행렬 끝에 다다르니 내 손엔 태극기와 애국을 부르짖는 홍보지, 팻말, 풍선 등이 가득 들려 있었다.

  무대 인근에 세워진 대형 스크린에는 박 대통령의 모습이 커다랗게 비쳐졌다. △국정교과서 △개성공단 폐쇄 △통합진보당 폐쇄 등 업적이라 일컬어지는 그녀의 행적들이 줄줄이 나열됐고 언론사 JTBC에서 최순실이 소유했던 태블릿 pc와 관련해 조작보도를 벌였다는 내용의 영상이 흘러나왔다. “탄핵기각!”, “계엄령이 답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던 사람들도 영상이 흘러나올 때만큼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오후 3시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의 발언을 시작으로 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과 김진태 국회의원의 발언이 이어졌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KBS에선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들지 말라고 선동하더니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사이트에선 3.1절인 오늘 유관순 열사가 태극기를 내리고 있는 사진을 메인 페이지에 올려놨다”며 “마찬가지로 저 거짓 촛불패 역시 3.1절에 노란 리본이 매달린 태극기를 들었는데 이는 태극기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손석희 JTBC 보도부문 사장의 최순실 소유 태블릿 PC 조작의혹을 제기한 그는 “손 사장이 언론중재위원회에 계속해서 참석하지 않고 있는데 이는 결국 조작 의혹을 인정하는 것이다”라며 “손석희, 나와서 돌 맞자!”라고 인신공격을 했다. 또한 이진삼 전 육군참모총장과 김진태 국회의원 역시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청렴한 대통령이다!”, “현재 대선 출마자들은 그저 박 대통령을 탄핵해 대통령 자리에 올라가려는 파렴치한 사람이다!”라며 발언을 이어갔다. 집회 참가자들은 발언자들이 앞으로 다가설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그들을 응원했다.

  오후 4시 30분쯤 집회 참여자 중 일부만이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했다. 탄기국 측은 이번 집회에 최대 500만 명이 참여했다고 추정하고 있어 모든 집회 참가자들이 행진을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행진에선 ‘좌파척결 북핵응징’, ‘헌정유린 국회해산’ 등의 빨간 깃발을 든 육사 구국동지회 무리가 앞장섰다. 주변 건물과 길가에는 집회 도중 지쳐서 앉아있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행진이 시작되면서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틈타 일부 집회 참여자들은 광화문 광장을 둘러싼 경찰차벽 사이로 언뜻 보이는 촛불집회 진영을 향해 온갖 욕설을 내뱉었다. 실제로 경찰차와 경찰차 간의 이음매 부분마다 “이 빨갱이 XX들”, “망할 X” 등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과 고성들이 오고 갔다. 그 가운데에서 경찰들은 이쪽저쪽을 오가며 흥분한 사람들을 진정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집회에서 한 할머니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이날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6.25에서 IMF까지 힘든 시기를 거쳐 이 자리에 오게 된 것이다”라며 젊은 사람들이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요즘 내 손자 자식이 촛불집회에 간다고 그래서 열심히 말렸다”며 “그런데 여태껏 얌전했던 손자가 도리어 나에게 태극기집회에 가지 말라고 큰소리를 치더라”고 말했다.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가 나타내는 갈등양상이 결국 세대간 갈등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꺼지지 않는 촛불의 열기

  저녁시간이 다가올수록 빗방울이 하나둘씩 번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광화문 광장은 촛불과 노란 리본이 묶인 태극기를 든 사람들로 점차 채워져 갔다. 광화문 광장으로 이동해 손에 들려 있던 태극기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곧바로 LED 촛불을 구입했다. 그제서야 제집을 찾아온 듯 불안한 마음이 진정됐고, 태극기집회에 참여하면서 생겼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었다.

  오후 5시가 가까워지자 태극기집회와 촛불집회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세종대로 사거리는 거의 아수라장에 가까웠다. 경찰차벽을 가운데 두고 한쪽에선 “박 대통령 탄핵 기각!”을 외쳤고 다른 쪽에선 “박 대통령을 탄핵하라!”고 맞섰다. 촛불집회 진영에선 태극기집회가 진행되는 방향을 향해 큰 소리로 나팔과 호루라기를 불면서 항의했다. 이에 반대편에선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손잡고’와 ‘멸공의 횃불’ 등의 노래를 불렀다.

  오후 5시쯤 ‘박근혜 퇴진 제18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가 본격 진행됐다. 이날 집회에선 △헌법재판소 탄핵인용 △3.1절 취지를 훼손하는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 △한일 군사정보협정 폐기 △특검법 제정 △박 대통령 적폐청산 및 개혁입법 처리 등을 촉구했다.

  이날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및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무대에 서서 발언을 이어갔다. 발언 내용은 무대 옆에서 청각장애인들을 위해 수화로 번역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겨울 내내 백만 명이 넘는 인파가 광화문 광장을 촛불로 밝혀주었다”며 “서울시장으로서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김삼중 전 독립기념관장은 3.1 운동의 취지를 설명함과 동시에 “정의와 불의의 갈림길에서 박 대통령의 운명을 결정할 8인의 헌법재판관들은 올바른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며 일침을 가했다.

  이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는 지난 2015년 12월 28일(월)에 강행된 한일 위안부 협상을 철회할 것을 촉구하며 “25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을 대상으로 공식적인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해왔다”며 “한일 위안부 협상을 강행한 박근혜 정권을 탄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언이 끝난 후 이용수 할머니는 3.1절을 맞아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아리랑을 불렀다. 이용수 할머니의 구슬픈 목소리는 사람들의 눈시울을 붉게 물들였다.

  이후 록밴드 노브레인의 공연이 이어졌고 촛불 위에 빨간 셀로판지를 덮어 점등식을 진행했다. 빗줄기가 거세짐에도 “박근혜를 탄핵하라!”, “황교안을 탄핵하라!” 등의 함성 소리는 광화문 광장을 크게 울렸다. 빗방울은 사람들이 들고 있던 우산을 타고 흘러내려 바닥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적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물에 젖은 쥐처럼 비에 흠뻑 젖어갔고 바람의 세기는 강해졌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집회 참여자들은 오히려 실수로 발을 밟은 사람들이나 어깨가 살짝 부딪힌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어보일 정도로 관대한 마음가짐을 갖추고 있었다.

  오후 7시쯤 촛불집회가 일단락된 후 촛불 대열은 청와대 방향으로 향했다. 이때쯤 많은 사람들의 표정에선 지친 듯한 기색이 물씬 느껴졌다. 곧 광화문 광장은 청와대로 향한 시위대로 인해 점차 비어갔다.

 

   태극기집회, ‘태극기의 의미’ 왜곡해

  1919년 3월 1일 우리 선조들은 온몸에 태극기를 두른 채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했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해 우리나라의 독립 의사를 세계에 알렸다. 그러나 98년이 지난 이날 그들도 선조들과 똑같이 태극기를 온몸에 둘렀다.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태극기는 흰색 바탕에 가운데 태극 문양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 4괘로 이뤄져 있다. 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를 뜻하는데 예로부터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나라의 민족성을 나타낸다. 가운데의 태극 문양은 음과 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은 음과 양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성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날 태극기 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있던 태극기엔 더 이상 평화와 조화라는 가치가 담겨 있지 않았다. 이들은 오로지 ‘애국’이라는 두 글자 뒤에서 자신들의 논리를 펼치는 데 태극기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반대 진영에 있던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국가의 반역자로 몰아갔다.

 

   우리나라가 나아갈 아름다운 미래

  집회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은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로 거듭나길 바라고 있다. 각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 중 몇몇에게 집회에 나온 이유를 물어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찬란한 미래를 언급했다. 그러나 각자가 가진 가치에 따라 ‘좋은 나라’의 정의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잘 먹고 잘 살길 바라는 사람의 ‘좋은 나라’와 모든 사람이 각자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나라를 꿈꾸는 사람의 ‘좋은 나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매주 벌어지는 탄핵찬반에 대한 갈등을 끝내기 위한 방법은 하나이다. 모든 사람들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논의를 거듭하고 ‘좋은 나라’에 대한 정의를 재정립해 올바른 정의를 내리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번엔 당신에게 묻겠다. “당신에게 좋은 나라는 어떤 곳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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