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국가들이 가진 이미지는 대부분 ‘낙후(落後)’라는 오명으로 채워져 있다. 싱가포르나 홍콩같이 이미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경우를 제외하고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여행하기 전에 ‘작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비포장도로 위를 활보하는 미터기조차 없는 택시, 현지인보다 열 배를 더 받는 외국인 요금, 그리고 콜레라나 장티푸스 같은 전염병 등은 심약해진 마음에 큰 공포를 일으켜 여행을 포기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지금에는 스마트폰으로 수많은 블로거가 올린 도시 정보를 생생하게 얻을 수 있기에, 오직 가이드북 한 권에 의지하여 여정을 짜던 시기에 열정과 불안이 마음속에서 요동쳤던 일이 새롭게 느껴진다.

  17년 전인 2000년 5월. 어감이 생소하여 개그 코너의 소재로 사용되기까지 했던 도시 ‘쿠알라룸푸르’를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가기로 했다. 말레이어로 Lumpur는 흙탕물을 의미하고 Kuala는 합류를 의미하는데, 합쳐보면 ‘흙탕물의 합류’라는 뜻을 가진다. 그런데 줄여서 ‘KL’이라고 통칭되는 이 도시는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흙탕물이 아닌 옥수(玉水)였다. 인천공항이 개항하기 이전이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의 장대한 위용은 지금의 말로 표현하면 ‘멘붕’을 안겨주었다. 도시의 관문에서부터 나는 나의 예상이 철저히 빗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훨씬 좋은 상태를 사람들은 ‘감동’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KL에서의 감동은 나를 2000년 이후에 다섯 번이나 더 이 도시로 인도했다. 물론 KL에 살고 있는 외국인 친구가 불러주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인(無人)으로 운영되는 지하철, 2003년까지 세계 최고층을 자랑했던 페트로나스 타워, 우리나라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명품 브랜드를 파는 고품격 쇼핑몰, 그리고 길가에 주차된 슈퍼 카들은 내가 사는 도시 서울보다 더 편리하고 현대적인 것이었다. 특히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식당이 참 많았는데, 다문화 다종교 사회인 말레이시아의 성숙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택시 기사조차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놀라움이었다. 흙탕물 같았던 나의 기대가 옥수 같은 실제 경험이 되어 이슬람 사원과 마천루 사이에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서울이라는 도시를 다른 나라 사람들은 오기 전에 얼마나 걱정스럽게 바라볼까를 생각해본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바로 서울을 향하고 있는 것을 우리나라 사람들만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도시를 도시로 즐기는 것이 아닌 GDP의 높고 낮음으로 바라봤던 나의 치졸한 편견을 반성한다.

  최고의 번화가 부킷빈탕(Bukit Bintang)의 화려함과 1957년 영국 국기를 내리고 말레이시아 국기를 게양함으로써 독립을 선포했던 메르데카 광장(KL Merdeka Square)의 당당함, 그리고 이슬람교를 국교로 가지고 있지만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포용성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흙탕물의 화려한 변신 쿠알라룸푸르 여행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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