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행동함이요, 행동하면 반드시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반드시 행한다”

-다산 정약용-

 

  난민 NGO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난민 조사 면접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난민 분에게 물었다.

“인터뷰 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 “...”
“무슨 문제 있으세요?”
- “배가 고파요... 돈이 없어서 이틀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눈물이 왈칵 났다. 본국에서 촉망 받던 정치부 기자였다가 투옥되고, 집회 도중 총 맞고 한국으로 망명한 분이다. 어떻게든 인정받게 해드리고자 가망 없는 소송이라도 조력하고 열심히 싸워 드렸지만 여기까지인가 보다.

  ‘공존, ‘공생’의 위기를 마주하는 현 상황에서 근원적인 원인을 고민하는 이들을 찾기란 쉽지 않다. 우리 시대 문제에 대한 전문가는 많지만 이 문제를 경유하여 진정한 앎을 추구하고, 윤리적 성찰에 매진하는 지식인의 모습은 보기 힘들다. 사르트르는 특수한 상황 속에 있는 보편적 원리와 원칙을 추구하는 것이 지식인의 존재 이유라고 했건만, 별 감흥 없이 다가오는 현실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이 어둠이 짙게 드리운 속에서 진정한 지식인이 되기는 이다지도 어려운데 나는 여태껏 쉽게 출근하고 쉽게 사람들을 만났다. 부끄럽지만 돌이켜보면 국화 한 송이 산 일 없이 하루하루 머리가 굵어졌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내가 만났던 난민들은 세상이 갈기갈기 찢어지려 할 때 찢어진 작은 부분을 붙이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실천하는 지성인이었고, 용기의 표상이었다. 그들이 만든 회복의 용기가 쌓여 훗날 가장 평온한 시대에 이르렀을 때, 나는 그 안전을 보장하고 평화를 회복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혹여나 어쩌면 다시 지난 날과 같이 위험한 신념을 수행해야 될 때가 오더라도 그 곳이 어디든, 그 주체가 누가 되든, 확신에 찬 신념이 모습을 드러낼 때 폭력을 쓰는 이들은 두려움에 떨고 억압에 놓여 있던 이들은 희망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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