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는 세금이 적재적소에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쓰인다는 것을 몸소 느낀다면 조세저항(租稅抵抗)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반면에 세금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 곳에 낭비되거나 심지어 위정자들의 축재(蓄財)수단으로 변질될 때, 사회적 신뢰는 무너지고 누구나 기회가 생기면 탈세행위를 하려고 할 것이다. 여러 도시를 방문하면서 목도하는 것이지만 ‘필요한 곳에 필요한 것’이 있는 도시는 시민의 세금이 잘 쓰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같은 국가에 있는 도시라도 어떤 도시는 시민을 무척이나 배려한 느낌이 든다. 승강기가 있어야 하는 곳, 점자(點字) 안내가 필요한 곳, 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곳, 유아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곳, 남녀노소 모든 시민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 이런 모든 장소가 효율적이면서 동시에 아름답게 디자인되어 있는 도시 브리즈번(Brisbane)에 도착했다. ‘Brisbane’은 1820년대 뉴사우스웨일스 주 총독의 성(姓)을 따라 명명된 것이지만, 왠지 어감상 ‘Breeze’가 먼저 떠오른다. ‘산들바람’으로 번역되는 이 말이 도시의 이름과 어울리는 이유는 브리즈번이 시민들의 노고를 달래주는 산들바람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1930년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시청사는 브리즈번에서 가장 고풍스럽고 위풍당당한 건축물이다. 시청 시계탑의 높이는 92미터에 달해 카메라 앵글을 맞추려면 고개를 수직이 될 정도로 뒤로 젖혀야 한다. 높은 곳에 올라가 도시의 이곳저곳을 사진으로 담는 것은 여행의 묘미임을 잘 알기에 시계탑 입장표를 사는 곳부터 찾았다. 그러나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안내 직원이 나타나 말한다. “이곳은 입장은 무료이며 30분 간격으로 지정된 안내원이 투어를 진행하는데 이것 역시 무료입니다.” 여행객에게 ‘무료’라는 말보다 반가운 말이 어디 또 있을까. 시계탑을 오르는 철제 승강기는 지금도 열쇠를 넣고 돌려야만 작동되는 수동방식인데, 수백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여행 중에는 간혹 시간에 대한 착시(錯視)현상이 발생한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이 말했던 ‘만들어진 전통’에 나의 뇌는 조정되고 있는 것인지.
 
  도시의 품격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의 수준에 따라 정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질 높은 휴식은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복지의 다른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사우스뱅크 파크랜드(Southbank Parkland)는 시민을 위한 휴식처의 교본이자 교과서라고 부르고 싶다. 브리즈번 강 바로 앞에 인공 해변을 만들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고, 바비큐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해 놓았다. 잔디는 잘 정돈되어 누구나 들어가서 준비해 온 담요나 매트리스를 깔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보던 ‘잔디보호’란 이상한 말은 찾아볼 수가 없다. 사람이 잔디를 보호하는 것인지 잔디가 사람을 보호하는 것인지 의아해할 필요가 전혀 없다.
 

  호주 제3의 도시 브리즈번에서 도시는 크고 작은 것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님을 절감한다. 도시는 도시의 구성원들에게 안식처임은 물론이거니와 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도 산들바람이어야 한다.

 

저작권자 © 숭대시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