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ㄱ 대학에 다니고 있는 A 군은 올해 학적을 변동했다. 이른바 학과를 바꾼다는 의미의 ‘전과’를 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진로 계획이나 흥미가 바뀌어서 전과를 한 것은 아니다. A 군은 “애초 대학에 들어올 때는 인문 계열 학과로 진학을 했으나 대학에서 생활하며 청년 취업난을 실감했다”며 “차후 취업을 생각해 봤을 때 인문 계열 학과에 남는 것보다 경영 계열 학과에서 졸업하는 것이 좋을 듯해 전과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A 군은 “경영 계열로 전과하는 것만으로는 취업을 확실하게 하기 어렵다”며 “다음 학기부터는 취업이 잘 되는 이공 계열 혹은 컴퓨터 공학 계열을 복수전공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러한 상황은 A 군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대학생들의 전과는 늘고 있는 추세다. 교육부에서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3학년도에는 전과 학생 수가 11,293명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4,723명으로 약 30% 증가했다. 또한 2015학년도 이후 이공 계열의 졸업자 고용률이 80%를 넘고 있다. 이에 대학생들은 이공 계열로의 전과 및 복수전공을 노리고 있다. 또한 컴퓨터 공학 계열도 최근 인기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지난 2015학년도부터 컴퓨터 공학 계열 학과의 복수전공생이 20명 이상 늘었다. 특히 복수전공 학생 중 60%가 문과생이었다.
 
  전과, 경영·경제 계열이 가장 많아…  취업이 잘 되기 때문?
 
  대학 내 학과 중 경영 및 경제 계열 학과로 전과하는 학생이 가장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교육부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지난해 전과한 학생 1만 4,723명 중 경영 및 경제 계열로 전과한 학생이 3,899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는 경영 및 경제 계열이 가장 취직하기 좋다는 인식 때문이다. 지난해 2학기 경제학과로 전과한 수도권 소재 ㄴ 대학 B 양은 “어문 계열 학과에서 졸업하면 차후 취직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느꼈다”며 “입학 때는 수시를 통해 어문 계열 학과에 들어왔지만 차후 취직을 조금이라도 쉽게 하기 위해 경제학과로 전과를 했다”고 전했다. 또한 애초 전과를 염두에 두고 입학하는 학생들도 있다. B 양의 동기인 C 양은 지난해 B 양과 함께 경제학과로 전과했다. C 양은 “정시로 대학에 입학했으나 당시 성적으로는 경제학과에 입학할 수 없었다”며 “애초 대학 진학 목적이 취직이었기에 타 학과로 전과할 수 있을 만큼의 성적을 내고, 취직이 상대적으로 쉬운 경제학과로 전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경영·경제 계열이 취직에서 유리한 것은 과거의 상황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학교육연구소 관계자는 “아직까지 어문 계열이나 여타 인문 계열 학과보다 경영·경제 계열 학과가 취업률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최근 경영·경제 계열 학과 졸업생이 늘어 해당 분야의 취업 경쟁이 심해진 상황”이라며 “차라리 인문 및 이공 계열 등 학생 본인의 흥미에 맞는 학과에서 졸업하고, 그 분야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인문 계열, 타 단과대학 복수전공 늘어…
 
  전과뿐만이 아닌 복수전공 제도 역시 학생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이때 복수전공 역시 경영·경제 계열 학과가 가장 많았다. 취업포털 사이트인 잡코리아에서 약 400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복수전공을 하는 학생 중 경영·경제 계열 학과를 복수전공 하는 학생들이 약 58.4%로 가장 많았다.
 
  또한 최근 이공 계열의 취업률이 높아 공과 계열 학과를 복수전공 하는 인문 계열 학생들도 늘고 있었다. 서울대의 경우 지난 2011학년도에는 인문 계열 학생이 이공 계열 학과를 복수전공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지난 2015학년도에는 인문 계열 학생 25명이 이공 계열 학과를 복수전공 했다. 이공 계열 학과가 복수전공 학과로 인기가 많아진 것이다.
 
  그러나 취업 때문에 복수전공을 시작하다 보니 학업이 쉽지 않다. 사학과에 재학 중이며, 산업경영공학과를 복수전공 하는 서울 소재 ㄷ 대학 D 군은 “이과생들도 점수를 잘 못 받는 미적분 과목을 듣고, 자연과학 과목을 기초부터 공부하는 탓에 학점 받기가 어렵다”며 “무역 및 물류 쪽에 관심이 있어 산업경영공학을 복수전공 했으나 학업이 원만치 않아 포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채용포털 사이트인 인크루트의 김대선 팀장은 “확실한 목표나 관심이 있어 공대 복수전공을 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공대 복수전공을 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넘쳐나는 전과 및 복수전공 학생에 속출하는 문제들
 
  또한 전과 및 복수전공 학생들이 몰린 학과들은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이유로 문제를 겪고 있다. 전공 수업의 여석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이다. 전공 수업은 각 학과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설한 강의이기 때문에 학과 정원에 맞춰서 여석이 정해져 있다. 전과 및 복수전공 학생이 늘어나면 수강신청이 늘어나며, 이에 따라 여석이 부족해져 모든 학생이 해당 과목을 들을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특히 졸업 요건이 되는 전공필수 과목은 학생들의 수요가 높기에 그러한 여석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또한 복수전공 학생들은 학과 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 복수전공을 신청할 수 있게 되는 시점은 2학년 혹은 3학년 이후인데, 수강신청을 하는 학생 본인보다 낮은 학년의 과목이 열리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즉 복수전공을 하게 되는 경우 그 전공에 대한 공부를 기초부터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2, 3학년 이후의 심화된 부분부터 공부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여석이 열리더라도 그 수업의 대상이 되는 학년이 모두 여석을 가져간 뒤 남은 자리 정도밖에 없기 때문에 복수전공 학생들에게 전공을 기초부터 배울 수 있는 기회는 적다.
 
  이에 수도권 소재 ㄷ 대학 교무처장은 “수강신청 문제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며 “많은 인원이 몰리는 특정학과의 복수전공 허용 수를 제한하거나 반별로 나눠 수업을 수강하는 등의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취업만이 목적인 학사 학위, “배움의 깊이 고려하지 않아”
 
  전과 및 복수전공에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확대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정부는 ‘인구론’(인문계 90%가 논다)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극심한 인문 계열 학생들의 취업난 해소를 위해 복수전공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표했다. 이에 대학가는 언어학, 문학, 역사학, 정치학 등 인문 계열 전공과 취업이 잘 되는 이공 계열 타 전공을 융합해 복수의 학위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융합전공을 만들었다. 또한 정부는 전과제도를 확대하기 위해 기존에는 2, 3학년만 전과가 가능했지만 올해부터 4학년도 전과를 가능하게끔 ‘4학년 전과제’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에 대학이 취업을 위한 곳이 됐다는 비판과 함께 학사 과정에서의 배움이 얕아질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고려대학교 장동식 교수는 “전과제도를 열어두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학생들이 대학을 학위만 따는 곳으로 여기게 돼 학사 과정에 깊이가 없어질 것”이라고 추측했다. 또한 서울대학교 이재진 교수는 “미국의 경우 부전공만 해도 1년 중 최선을 다해 학업에 임해야 하는데 한국의 경우 학사 과정이 매우 얕은 수준”이라며 “전과와 복수전공을 확대하는 교육부의 정책은 학사 과정에서 필요한 배움의 깊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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