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만 최악의 결과가 두려웠다.” 주인공 이강이의 말이다. 그녀는 다만 최악의 결과를 두려워했다. 그녀는 최악의 동네 읍내동에 살면서 최고의 동네 전민동의 중학교에 다녔다. 최악의 평판을 지닌 아름이와 최고의 평판을 지닌 소영이와 친구가 됐다. 하수구에 풀어 준 투어(鬪魚)는 눈발을 닮은 곰팡이에 묻혀 최악의 죽음을 맞았고 집안의 멍청한 애완 강아지와는 예쁜 눈밭에서 최고의 마지막을 약속한다. 최악과 최고는 대립한다. 최악과 최선은 대립한다. 최고와 최선은 다르다.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최고가 아닌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주인공 강이는 그중에서도 가장 최선의 삶을 위해 분투하는 인물이다. 강이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가방에 식칼을 지니고 다녔다. 소영이는 장우산을 들어 아이들을 팼고, 아름이는 길고양이의 병원비를 위해 도둑질을 일삼았고, 강이의 어머니는 정화수를 떠 기도하며 강이의 안녕을 기원한다. 모두 최선을 다해 살아남고 싶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언급하자. 최고와 최선은 다르다.

  강이는 결말에 아름다운 함박눈을 본다. 영원히 그치지도, 녹을 것 같지도 않은 함박눈을 바라보며 안도감에 휩싸인다. 그 상황에 느낄 감정이 아니었음에도 강이는 편안한 마음을 갖는다. 최선의 삶이란 분투하는 것이다. 자신의 방식으로 분투한 뒤에 찾아오는, 함박눈같이 오묘한 안정감을 받는 것이다. 우리의 도구는 무엇일지 모른다. 그건 아름답거나 온화하지 않을 수 있다. 작가는 이 사실을 말하고자 했다. 나는 그것을 느꼈다. 최선의 삶에는 왕도가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최선을 향한 방식을 감히 비판할 수 없다. 최선을 향한 노력은 누구에게나 눈물겹고 응원받아야 마땅하며 대단한 일이다. 여타의 기준에 빗대어 보았을 땐 비판의 여지가 있는 행동일지라도, 최선을 향한 의지 그 자체에는 언제든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최고가 아닌 최선을 향하는 삶. 오늘도 여러분이 살아남길 바란다. 최선을 다해서. 최선의 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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