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 곳에는 마치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악당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온갖 전횡을 일삼던 악당은 결국 법의 심판을 받거나 영웅에 의해 단죄(斷罪)된다. 이런 인간사의 이야기들은 전설이나 신화라는 이름으로 후세에 전해진다. 심지어 도시의 이름으로도 남는다. 이 도시에서는 안티곤(Antigoon)이라는 거인 악당이 통행세를 강제로 징수하였는데,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손을 잘라 강물에 버렸다고 한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세금을 내야만 했고, 간혹 객기(客氣)를 부리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손목이 잘려 나갔다. 이런 와중에 실비어스 브라보(Silvius Brabo)라는 영웅이 등장하여 안티곤의 손목을 잘라 이 도시를 휘감아 돌아 나가는 스헬데(Schelde) 강물 속으로 던졌다. 부당한 세금의 고통 속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브라보의 선행을 기리고, 네덜란드어로 손을 뜻하는 ‘Ant’와 던져버림을 뜻하는 ‘Werpen’을 붙여서 이 도시를 Antwerpen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인간의 역사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일 뿐만 아니라, 칼로 망한 자는 칼로 망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실현시키면서 이어져 나가는 것이리라. 북부에서는 네덜란드어가 사용되고, 남부에서는 불어가 통용되는 나라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에 도착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플란다스의 개는 마징가, 그랜다이저 등과 더불어 내 유년 시절을 풍성하게 해주었던 작품이다. 불우한 소년 넬로와 충견(忠犬) 파트라슈의 슬픈 이야기는 늘 내 눈물보를 터트렸었다. 물론 영국의 작가 매리 루이스(Marie Louise)의 동화가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이다. 안트베르펜은 원작 동화 <A dog of Flanders>의 배경이 되는 도시이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기업 토요타가 이 도시에 넬로와 파트라슈의 동상을 제작하여 기증하였는데, 이 동상을 보기 위해 일본 관광객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한국 사람들은 어릴 적 봤던 이 애니메이션의 감동을 느끼기 위해 이곳으로 올 것 같다. 작은 동상 하나가 한 도시의 분위기를 바꾸고 심지어 명소로 만드는 것을 보면 스토리텔링의 유무(有無)는 현실적인 의미에서 도시의 세수(稅收)에도 큰 영향을 준다 하겠다. 이런 관점에서 전 세계 도시에 설치되고 있는 위안부 소녀상은 어떤 의미를 지닐지.

  플랑드르 지방의 중심 도시인 안트베르펜은 ‘플랑드르의 화가’라고 불리는 루벤스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이 도시의 상류 부르주아 가정 출신인 그는 이곳에서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였고 거장으로부터 미술 수업을 받았다. 안트베르펜 성모마리아 대성당에 있는 <십자가를 세움>과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는 루벤스의 대표작이다. 이 두 작품은 나폴레옹이 프랑스로 가져갔다가 벨기에의 독립 이후 다시 돌아오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 명성이 유럽 전역으로 퍼진 화가 루벤스는 플랑드르 지방의 분위기를 남유럽 화풍에 접목시킨 많은 작품을 화폭에 담다가 평생 사랑했던 안트베르펜에서 눈을 감았다.

  프랑스도 아닌, 그렇다고 네덜란드라고 하기에도 좀 어색한 플랑드르 지방의 특색과 동심의 세계를 자극한 동화와 애니메이션의 감동, 그리고 거장의 작품이 주는 아우라를 직접 느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안트베르펜을 추천한다.

 

  플랑드르 지방의 중심 도시인 아트베르펜은 스토리텔링의 보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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