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자는 지난해 1학기에 교양필수 과목인 ‘숭실인의 역량과 진로탐색1’을 수강했다. 해당 수업에서 본 기자는 한경직 목사의 업적을 배웠다. 이후에 본 기자는 따로 한경직 목사에 관해 조사하다가 매우 당황했다. 한경직 목사가 제주 4.3 사건 당시 제주도민을 학살했던 ‘서북청년단’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 4.3 평화재단’에 따르면 한경직 목사는 1945년 소련군의 침략으로 인해 월남하게 됐고 오늘날 ‘영락교회’의 시초인 ‘베다니교회’를 서울에 세웠다. 베다니교회는 이북에서 월남한 개신교인들이 모여 만든 교회였고 공산주의에 반하는 성향을 띄었다. 그 다음 해에 베다니교회 청년들을 중심으로 서북청년단의 시초인 ‘서북청년회’가 결성됐다. 서북청년회에서 비롯된 서북청년단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되는 자에게는 무조건적인 공격을 가했다. 특히 미군정은 제주도 4.3 사건에서 서북청년단의 성향을 이용해 미군정의 명령에 대항하는 지역에 이들을 파견하기도 했다. 
 
  한경직 목사는 베다니교회의 대표자로서 제주 4.3 사건을 주도했던 서북청년단의 만행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김병희 작가가 저술한 『한경직 목사』에는 “그때 공산당이 많아서 지방도 혼란하지 않았갔시오. 그때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되어 조직을 했시오.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오.”라는 한경직 목사의 발언이 담겨 있다.
 
  잘한 일에 대해서는 칭찬 받고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엄격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한경직 목사가 장로교의 목회자이자 교육자로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고 노벨 종교상이라고 일컬어지는 템플턴 상을 수상했지만 서북청년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은 안타깝다.
 
  학교는 학생에게 본교 역사 속 인물들의 업적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을 학생이 자율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인물들의 업적은 본받고 잘못한 행적은 비판할 줄 아는 변별력을 가진다. 이런 교육이야말로 숭실인들이 과거 숭실의 뛰어난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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