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있어서 당연한 존재가 사라지는 일이 있다. 그 당연함은 엄마처럼 친숙한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공기처럼 항상 내 옆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먼 과거부터 얼마 전까지 어느 장소에만 들르면 볼 수 있거나, 맛볼 수 있는 그런 것. 그곳에 다시 방문할 때, 당연히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던 그 어떤 것이 돌연히, 어떤 징조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이따금씩. 정말로 간혹.

 

  그러한 소실(消失) 덕에 떠오르는 것은, 그 없어진 무언가를 함께 누렸던 어떤 이다. 어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존재일지도 모르는 그는 과거처럼 터무니없게 일상적인 얼굴을 들이밀며, 공상 속에 자리 잡을 수도 있다. 또 그렇게 공상 속에 자리 잡다가, 계속해서 떠올리다가, 그에 대해 생각하다가, 우연의 우연으로, 아무도 몰랐을 어떤 불투명한 계기로, 만나지는 않았지만 조우한다면, 그것도 일방적으로 골몰하여 바라본다면, 그것은 행운일까.
 
  심지어 그가 만약 사랑이었다면 어떨까. 분명 자신도 그것을 과거에 알고 있었지만 똑바로 깨닫지는 못한 그런 사랑이었다면. 부끄러울 게다. 얼굴도 한없이 붉어지고, 몸을 비비 꼬거나 어딘가로 훌쩍 숨어버릴 만한, 감정을 안을 게다.
 
  그러나 그는 나무를 보란다. 나무는 ‘ㅋㅋㅋ’ 하고 웃지를 않는다며, 나무나 바라보란다. 그렇게 바라본 나무는 변함도, 비웃음도 없이 가만가만 중이다. 쭉 가만가만 있다. 마음이 편해지지.
 
  깨달았다. 자신이 나무를 좋아하게 됐노라고. 단지 가만가만 있다는 이유로. 아니 그것보단 오히려 변하지 않으며, 비웃지도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그것을 좋아하게 된 게다. 왜냐면 스스로가 누군가에 비치는 것이. 움직이고, 웃음을 웃으며,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비치는 것이 부끄럽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너무 한낮이었다. 누군가에게 비칠 은밀한 연애는 너무나도 부끄럽듯이, 그것도 그러한 사랑이었다. 얼굴은 발개지고, 해는 내리쬐겠다. 발개진 얼굴은 가려지겠지. 간혹 너무나도 맑은 날엔, 그 부끄럼조차 소실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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