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저장성(浙江省)은 예전부터 거상(巨商)들이 많기로 유명했다. 큰 비즈니스맨들이 넘쳐나니 부자들도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2016년 중국의 후룬(胡潤)이라는 사이트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 돈으로 3,700억 원 이상을 가진 중국 부자 2056명 중 248명이 저장성 출신이라고 한다. 물론 순위로는 단연 1위.
 
  저장성의 성도(省都)인 이 도시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렸다. 행재(行在), 임안(臨按)으로 불리다가 마르코 폴로와 이븐 바투타 등의 외국 여행가들에 의해서 ‘킨자이(Kinzai)’라는 이름으로 유럽에 소개되었다. 특히 마르코 폴로는 이곳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했다. 부자가 많으니 자연스럽게 미인들이 모여든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이 지역의 물과 공기가 좋아 미인이 많이 태어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인들에게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이곳 미인을 최고로 친다. 마르코 폴로는 부자들의 향연(饗宴)에 모여든 미인들을 보고 이 도시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묘사한 것은 아닌지. 남자에게 있어 미인이 많은 도시라니 이 얼마나 황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단 말인가. 길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미인들을 상상하며 상하이에서 항저우(杭州)로 내려왔다. 한국에서도 인기 높은 중국 여배우 탕웨이의 고향이 항저우라니 명불허전이다. 중국 사람들이 왜 항저우를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꼽는가도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중국 10대 명승지로 꼽히는 씨후(西湖)는 항저우 서쪽에 위치한 인공 호수이다. 인공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항저우와 잘 어우러지는 이 호수의 전경은 양귀비, 초선, 양소군과 더불어 중국 최고의 경국지색(傾國之色)으로 불리는 씨스(西施)에 버금갈 정도로 아름다워 씨쯔후(西子湖)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석양이 지는 호수 위에 배를 띄워 놓고 지역의 내로라하는 부자들과 절세가인들이 벌였던 선상 파티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나는 한시에는 문외한이지만 소동파(蘇東坡) 같은 문인이 그런 광경을 시로 묘사해 냈을 듯싶다. 실제로 소동파는 항저우의 주(州)장관을 지냈다고 한다.
 
  북쪽의 금나라에게 밀려 남쪽으로 내려온 송나라의 임시 수도였던 항저우는 남송시대의 문화를 간직하려 노력 중이다. 특히 허팡지에(河坊街)는 남송시대의 다양한 먹을거리와 건축 양식을 재현해 낸 번화가이면서 관광지다. 어떤 이는 서울의 인사동과 비슷하다고 하는데 인사동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섬세함이 있다. 많은 상점의 점원들은 송나라 시대의 복장을 하고 손님을 맞는다. 인사동이 한국의 전통 공예품을 파는 거리라면 허팡지에는 그 이상의 감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마오쩌둥의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서는 이곳이 더 이상 송나라가 아닌 중화인민공화국임을 실감하게 해준다. 마치 경주에 갔더니 한국의 대통령 기념품을 파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내가 항저우에 갔던 시기는 한 번은 여름이었고 다른 한 번은 가을이었다. 사시사철 다 특색이 있는 항저우지만 벚꽃이 피는 시기의 항저우 역시 최고의 절경으로 꼽힌다. 할 일이 많아 마음이 무거워 벚꽃 구경을 하러 갈 수 없음을 아쉬워하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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