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신앙이 깊은 사람은 아니지만 모태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이다. 그래서 일까 불교는 왠지 신비스럽다. 해탈(解脫)이나 열반(涅槃) 같은 말을 들으면 과연 어떻게 해야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매우 궁금하다. 오랜 세월 지독한 고통을 감내해야 이를 수 있는 경지라면 죽어서 어떻게 되든 편하게 살다 생을 마감하고 싶기도 하다. 나아가 대입 학력고사에도 종종 나왔던 팔정도(八正道) 같은 불교 수행 용어를 들으면 신비감은 극에 달하게 된다. 그에 반해 기독교는 보다 명쾌하게 다가온다. 예수께서 선물로 주신 구원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 누구나 천국에 간다는 논리다. 고행을 통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의심 없이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나를 더 편하게 하는 것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기분이 든다.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후 3일 후에 부활하셔서 신체의 일부가 전혀 남아 있지 않지만, 부처의 경우에는 화장(火葬)이 치러진 후 신체의 많은 부분이 대부분의 불교 국가로 퍼져 나가서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불교는 상당히 실제적이다. 각 사찰에 모셔진 부처의 사리(舍利)나 뼛조각이 진짜인지는 맨 처음 그것을 가져온 사람들만이 알겠지만, 어쨌든 눈앞에 놓인 그분의 신체 일부분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사람은 없을 듯싶다. ‘부처님의 치아’가 모셔져 있다는 불치사(佛齒寺)의 도시 캔디(Kandy)에 도착했다.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 9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이 도시로 오는데 다섯 시간이 넘게 걸렸다. 하루에 미국 달러로 60불이나 주고 고용한 택시 기사는 왜 이렇게 더디게 운전을 하는지 이런 속도라면 한 달 동안 달려도 대한민국의 3분의 2정도밖에 되지 않는 크기의 스리랑카도 다 못 볼 것 같았다. 한 시간 간격으로 차에서 내려 길가에서 파는 코코넛을 마셨는데 이것이 유일한 위안거리가 되었다. 
 
  불치사 앞에는 밤낮을 불문하고 현지인과 나와 같은 관광객들이 입장을 위한 긴 줄을 만들어 낸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불교 신도는 아니겠지만 부처의 치아는 작은 불심을 만들어 1807년 캔디 왕조 때 만들었다는 인공 호수 위에 드리우는 것 같다. 여행을 하다 보면 자연 호수만큼이나 인공 호수가 많음을 알게 된다. 현지인은 무료입장인 이곳이 외국인에게는 10불의 입장료를 받는데 이것 또한 ‘인공적’인 것 같아 작은 불만이 마음속에 일었지만 부처님의 ‘진짜 이’를 보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니 불만도 곧 사라져 버렸다. 중요한 것은 불심이 호수 위에 이는 잔잔한 바람을 타고 이 산악 도시의 곳곳을 휘감는 영감(靈感)을 느꼈으니 불치사가 나에게 충분한 보상은 해준 셈이다.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1964년 한경직 목사님의 주례로 영락교회에서 결혼하셨고, 나는 평생 주의 종으로 살아가셨던 한경직 목사님으로부터 아기 세례를 받았다. 학교 안에 있는 한경직기념관 앞을 지나갈 때마다 아직도 내 마음이 설레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불치사의 유물보다 눈에는 안 보이지만 더 강렬한 예수님의 음성을 느끼기 때문은 아닐는지.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의 차이를 캔디에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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