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이 연출한 연극을 보았다. 연출한 작품은 미국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 동물원(The Glass Menagerie)’으로, 대공황 시기에 몰락하는 한 가정의 이야기다. 이 가정의 인물들은 모두 자신만의 환상을 가진 채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끊임없이 번뇌한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왔던 인물은 막내 아들 톰이다.

  부두 창고 잡역부로 일하는 톰에게 가정이란 그저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올가미다. 가난에 허덕이는 가족들이 유일한 생계원인 그에게 매달릴 때면, 톰은 신경질적으로 문을 박차며 “영화관 가요!”라고 대꾸하기 일쑤다. 톰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영화관은 얼핏 보면 현실 도피를 위한 유일한 대안에 불과해 보인다.

  하지만 어릴 적 훌쩍 떠나버린 아버지에 대한 상실감을 안고 사는 톰에게 영화관은 단순한 현실 도피 장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영화관에서 만큼은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한 아버지를 되새긴다. 톰에게 영화관은 한때 품었던 이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처럼 현실의 영역과 현실 너머 이상의 영역은 완전히 독립되어 있지 않다.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현실 너머의 측면에서 현실을 살펴야 하고, 현실 밖의 이야기는 현실에서 그 자양분을 얻어야만 한다.

  톰은 영화의 이상을 통해 현실의 갈등을 봉합해 간다.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그때는 그랬지”를 차분히 되뇌다 보면 ‘현자타임(‘현실자각타임’의 줄임말, 현실을 인정하고 현실에 초연해지는 시간)’이 찾아온다. 톰과 같이 대공황의 불확실성과 2차 세계대전의 이데올로기 충돌을 마주한 당대 청년들에게 영화관은 ‘현자타임’을 위한 유일한 대안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21세기 헬조선에서는 이마저도 ‘현시창(‘현실은 시궁창’의 줄임말)’인지라 ‘현자타임’을 가질 여유도 없다. 이때에 우리 안의 톰은 “영화관이라도 가자!”고 계속해서 외친다. 그리고 이대로 시간을 붙들고 있을지 말지 그 선택은 우리에게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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