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히 츠빙글리(Ulrich Zwingli)는 이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그로스뮌스터(Grossmunster) 교회에서 타락할 대로 타락해버린 종교의 개혁을 설파했다. 그는 ‘마녀사냥’이 횡행하던 시기에 언제든 화형(火刑)에 처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국민 위에 군림하는 성직자들이 자기 멋대로 정해 놓은 교리가 아닌, 성서(聖書)에 근거하여 행동할 것을 주장했다. 츠빙글리는 비록 카톨릭 군과의 전쟁에서 종군목사로 활동하다 47세의 젊은 나이에 전사하였지만, 그의 사상과 행동강령은 요한 불링거(Johann Bullinger)로 이어져 스위스를 종교개혁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위대한 종교개혁가의 도시 취리히에 개혁이라는 이름의 신선한 공기를 흡입하고자 수도 베른과 카펠 다리가 있는 루체른을 거쳐 들어왔다. 개혁, 그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선한 공기가 아닐 수 없다. 말로만 외치는 개혁이 아닌 몸소 실천하여 성공시킨 개혁은 영원히 신선한 공기를 우리에게 공급해준다. 

  취리히는 오스트리아 빈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됐다.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생태 도시임은 물론이며,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는 도시로도 명성이 높다. ‘ETH Zurich’로 불리는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이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는 21명에 이른다니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아인슈타인은 이 학교에서 배웠고 이 학교에서 가르쳤다. 재미있는 것은 천재 중의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그가 첫 번째 입학시험에서는 낙방하고 재수(再修) 끝에 입학한 곳이 이 대학의 물리학과라는 사실이다. 아인슈타인이 재수를 했다니 21명을 배출할 만하다.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은 아마도 교육에까지 확대되어 교육방식마저 송두리째 개혁해 버린 건 아닐는지. 중앙역 근처에 세워진 근대교육의 아버지 요한 페스탈로치(Johann Pestalozzi)의 동상은 아직도 교육을 통한 사회 개혁을 외치고 있는 듯 보였다. 조삼모사(朝三暮四)식의 학제개편으로 교육 개혁을 이루어보겠다는 대한민국의 정치인과 행정가들은 이곳에 와서 공부부터 먼저 해야 할 듯싶다. 
 
  중앙역에서 20분 정도 남쪽으로 걸어 내려오면 알프스 산맥의 만년설 봉우리들을 감상할 수 있는 취리히 호수에 도착하게 되는데, 중앙역에서 취리히 호수까지 연결되는 널찍한 길을 사람들은 반호프 거리(Bahnhofstrasse)라고 부른다. 개인 승용차는 다닐 수 없고 전차만이 보행자의 그림자를 밟으며 고즈넉이 운행된다. 물론 불법 노점도 없다. 이곳에서는 ‘걷는 권리’가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천만 명이 사는 서울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서울의 어딘가에도 보행자가 최우선인 차 없고 불법 노점 없는 번화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개혁은 도시의 디자인마저 변화시키고 국민의 당연한 권리까지 더욱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 것일까. 돌이켜 생각건대 취리히에서 본 모든 것에 개혁이라는 키워드를 대입시켰던 이유는 개혁의 중심에 인간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말로만 외쳐대는 무책임한 언어 유희가 아닌 진정한 개혁의 원류(源流)를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 취리히 여행을 권한다. 폐로 흡입하는 공기는 말할 것도 없고 정신으로 흡입하는 진정한 개혁의 공기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기 대한민국에서 개혁을 외치는 자, 실천만이 정답임을 취리히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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