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프랑스어로 더 이상 수업을 하지 못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모습을 담아낸 명작 단편소설이다. 이 작품이 특히 한국에서 인기를 구가(謳歌)했던 이유는 우리도 일제강점기 당시 한글을 사용하지 못했던 아픔을 겪어서일 것이다. 이 소설에서 독일은 점령군임과 동시에 프랑스어 사용을 금지시키는 무뢰한인 것처럼 묘사되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은 그와는 다르다. <마지막 수업>의 배경이 되었던 알자스로렌(Alsace-Lorraine) 지방은 중세시기 이후 줄곧 독일의 영토였으나, 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독일은 전범국으로서 프랑스에게 이 지역을 양도했다. 알자스로렌 지역의 원래 언어는 알자스어(Elsässisch)로 독일어의 방언이다. 언어는 문화와 국경을 나누는 구분선이 될 수 있다. 석탄과 철광석이 풍부하여 산업화가 빨리 이루어졌고, 독일과 프랑스는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분쟁과 전쟁을 반복했다는 중학교 때 지리 선생님의 설명이 아직도 귀에 선하다. 알자스로렌 지방의 중심도시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에 이 도시를 슈트라스부르크(Straßburg)라고 부르는 독일 친구와 함께 도착했다. 아직도 독일인들은 이 도시를 독일의 것이라고 여기는 것일까. 너무 미묘한 것이어서 친구에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나를 스트라스부르에 데리고 와 준 친구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독일 회사의 최고경영자를 역임한 하인츠 브루너(Heinz Brunner)인데, 음악애호가여서 거의 매 주말마다 이곳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에 온다고 한다. 한국과 국경 아닌 국경을 맞댄 나라는 북한뿐이라고 생각하니 이렇게 국경을 차로 넘어와 오페라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큰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낮에 도시를 먼저 구경하고 밤에는 비발디 작품의 협연을 관람하기로 했다. 건물과 교회, 그리고 사람들마저 독일과 너무 비슷한데 이곳을 프랑스라고 여기자니 조금은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식당에서 친구의 추천으로 알자스식 요리를 주문했다. 요리 이름은 우리에게는 좀 생소한 슈크루트(Choucroute). 발효된 양배추에 소시지와 베이컨, 감자와 양파를 곁들이는 음식인데, 와인보다는 맥주가 더 어울렸다. 이분법으로 설명되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겠지만 와인이 어울리면 프랑스이고 맥주가 어울리면 독일이라는 식의 막연한 생각이 음식을 먹는 내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근대 인쇄술을 발명한 독일인 구텐베르크도 이 도시에서 살며 그의 위대한 발명품을 더 발전시켰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큰 대학이라는 스트라스부르 대학을 설립한 것도 독일제국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 도시를 프랑스라고 부르는 것에 회의가 몰려온다.

  1962년 인구 30만의 작은 도시 스트라스부르에 유럽의회가 설립되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끝까지 차지하고 싶었던 이 분쟁 지역에 유럽의회가 있다는 것은 프랑스 안의 독일, 독일 안의 프랑스를 인정하려는 유럽인들의 지혜는 아니었을까. 도시를 흐르는 아름다운 일 강(L’ill River)의 운하만이 그 답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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