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모든 정치 참여는 항상 투표 말고는 상상되지도, 시민 사이에서조차 그 외의 것은 허용되지도 못하기에 개인적으로 투표에 회의적이다. 때문에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을 무렵 나름의 기권 방식으로 어떤 웃긴 후보를 찍으려 했다. 이번 선거는 어차피 당선 후보가 확정된 선거였고 한국 사회에서는 늘 그랬듯 당선된 후보 외의 표들은 ‘당장의 여론’ 말고는 별다른 정치적 의미를 인정받지 못해 왔으니까. 그런데 이 웃긴 후보는 갈수록 장난으로라도 찍을 수 없을 만큼의 끔찍한 모습들을 연이어 드러냈다. 그 다음으로는 도장으로 나름의 메시지를 적어 투표를 할까 생각했다. 그러나 이 웃긴 후보가 선거비용 보존 득표율이 예상되고 무효표는 득표율에 포함이 안 된다고 하여 투표 당일 원치 않는 마음을 갖고 결국엔 득표에 포함이 되는 투표를 했다. 

  그래봐야 사천이백만 중에 하나가 얼마나 위력을 갖겠다고. 이런 고민도, 항의도 결국엔 시민 하나의 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는 제도 속에서 어떻게든 내가 그런 권리를 갖고 있다는 자기 최면을 위한 행동에 불과할 것이다. 어차피 그날은 개표, 심지어 출구조사가 나오기 전부터 당선 후보 지지자들의 날이었고 동시에 당의 명맥을 간신히 이어가는 사람들의 날이었다. 어떤 정당은 미래를 도모하고, 어디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또 누군가들에겐 기회가 된 날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5당 모두에게는 축제의 날이었으며 전략을 다시 짠 날이었지만 한국이란 사회는 5당만으로 환원될 수 없고 그렇게 이해되어서도 안 된다. 5당 밖에는 고공의 노동자들이 있고 눈물 흘리는 성소수자들과 특정 정당 말고는 생각할 수 없는 ‘영감탱이’들이, 늘 전쟁 같은 삶의 장애인과 그 가족들, 그리고 내일조차 갖지 못하는 빈민들이 있다. 대리인을 가진 이들은 지지하는 후보들의 당락에 웃고 울 테지만 일상에서 지워져 버린 이 사람들은 그저 흐느끼듯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투표가 전부가 아니다. 투표 그 외의 것이 더욱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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