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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문화
‘덕질’하는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조연우 수습기자  |  yeonnn0114@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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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1호] 승인 2017.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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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질 전성시대: 그 전성시대에 왜 ‘빠순이’는 제외 당하나요?

 
  바야흐로 ‘덕질’ 전성시대이다. ‘덕후’ 혹은 ‘덕질’은 과거에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속 2D 캐릭터를 좋아하면서 집에서 혼자 망상을 즐기는 사람들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뜻했으나, 최근에는 다양한 장르와 소재에 대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도라에몽 덕후’ 심형탁이나 ‘엑소 덕후’ 오연서, ‘냉면 덕후’ 존박 등 특정 인물이나 사물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덕후’라고 지칭하게 되었다.
 
  이처럼 덕후 혹은 팬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으나,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을 받으며 취미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팬덤인 ‘빠순이’들이다. ‘빠순이’란 자신보다 높은 연령의 남성 연예인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10대 여성 팬덤을 이르는 멸칭이다. 이 단어에는 잘생긴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어리석은 어린 여자라는 이미지가 내포돼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팬덤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부정적인 인식을 고수하고 있다. 가령 많은 사람들은 건전한 팬덤 문화를 즐기는 팬과 사생팬을 혼동하며 팬덤 자체를 특정 연예인의 사생활을 알아내기 위해 해당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극성팬 정도로 간주하는 것이 그 예이다. 
 
  더 나아가 팬덤 내에는 다양한 연령과 계층이 속해 있으나, 유독 아이돌을 좋아하는 여성 팬들에 대해서만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아이돌 외에 인디 밴드나 랩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음악을 즐기는 팬이며, 아이돌을 좋아하는 남성 팬은 (나이와 무관하게 아이돌보다 낮은 위치에서)오빠를 외치는 빠순이 대신 (아이돌보다 높은 위치의)삼촌 팬이 된다.
 
  잡지 ‘계간홀로’의 이진송 편집장은 소위 빠순이라고 불리는 여성 팬에 대한 혐오는 여성의 소비문화와도 관련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편집장은 “여성의 취미와 소비는 사치나 낭비로 직결되어왔다”며 “그러나 사치와 낭비는 여성의 속성이 아니라 어느 집단에나 있는 누군가의 속성인데, 여성에게만 ‘된장녀’, ‘김치녀’와 같은 낙인을 찍으며 ‘개념녀’가 될 것을 종용한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인식은 여성의 취미나 소비 분야를 폄하하는데 일조하고, 빠순이는 혐오의 대상이 되며 ‘슈퍼 을’의 자리에 서게 된다.
 
 
  빠순이들의 포지션: 절대적 약자가 되는 팬덤
 
  ‘빠순이’는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 사이에서 언제나 약자 혹은 피해자였다. 아이돌 그룹 ‘엑소’ 팬 중 한 명은 콘서트를 관람하러 갔다가 보안요원에게 “가슴에 카메라를 숨기고 들어왔을지 모르니 가슴을 만져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한 씨엔블루 매니저 등 연예인 매니저들의 팬 폭행이 연이어 공론화되며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의 팬덤 대응 방식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처럼 여성 팬은 ‘질서를 유지한다’ 혹은 ‘아티스트를 보호한다’는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에 의해 오랜 시간 동안 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왔다.
 
  ‘팬심’을 이용한 노동력 착취도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 수호가 출연한 드라마에서는 엑스트라로 팬 200여 명을 모집했다. 팬들은 현장 스태프의 협박성 발언과 무례한 태도에 시달리며 17시간을 촬영장에서 보냈지만 한 푼도 지급받지 못한 반면, 팬들과 같은 노동을 한 다른 엑스트라들은 보수를 지급받아 논란이 되었다. 국내 아티스트가 총출동하는 ‘서울가요대상’이 무보수 스태프를 모집했다가 철회한 사건도 있었다.
 
  <빠순이들은 무엇을 갈망하는가?>의 공동 저자 강준만 교수는 “팬들은 엄연히 소비자인데 (연예인 팬덤계만큼) 자기 돈을 내고 공연장에 오는 고객을 이렇게 하찮게 대하는 곳이 없다”며 인권 침해를 지적했다. 이어 “여성 팬의 인권 침해에 대한 논의를 시작으로, 약자로 간주되는 사람들을 함부로 해도 된다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 역시 고쳐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팬덤의 발전: 정치적, 사회적 움직임을 주도하는 팬덤
 
  팬덤은 팬 내부의 문제를 자체적으로 개선해 나가기 위한 공론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예로 얼마 전 벌어졌던 #팬덤_내_사이버불링_아웃 해시태그 운동이 있다. 그동안 사이버불링은 팬덤 내부의 암묵적인 규칙을 거스르는 사람을 단죄하기 위한 정당한 행동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팬덤 내부의 규칙을 완전히 올바르다고 볼 수 없을 뿐더러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의견이 제기된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팬덤 자체적으로 입·출국하는 아티스트를 따라가 공항 사진을 찍는 것은 사생활 침해의 일부라며 공항 사진을 소비하지 말자는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젠더 및 인권의식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팬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우주소녀 제노포빅 발언 아카이빙’ 계정은 해당 그룹 멤버들이 외국인 멤버의 어눌한 한국어를 흉내 내면서 이를 유머로 소비하는 것은 일종의 인종차별이라고 밝혔다. 또한 ‘방탄소년단 여성혐오트윗 공론화’ 계정은 방탄소년단의 여성혐오적 발언과 가사 등을 지적해 소속사로부터 사과문을 받아내기도 했다. 팬덤 내 사이버불링 피해자 A 씨는 “아이돌의 혐오 발언이나 팬덤의 사이버불링을 지적하는 행위는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며 그것이 옳은 행동”이라고 밝혔다. 또한 한 트위터리안은 “아티스트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막지 말라”며 “애정을 가지고 아티스트에게 상생할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억압하지 말라”고 첨언했다.
 
  여성 팬들은 실질적인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참여도 실천하고 있다. 일례로 여러 팬덤이 모여 ‘응원봉 연대’와 ‘민주팬덤연대’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 야광봉을 들고 모인 팬들은 ‘촛불시위가 장난인 줄 아느냐’ 혹은 ‘집에 가서 공부나 하라’는 비난에 부딪혔으나, 이에 응원봉 연대 공식계정은 “저희가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저희가 가장 잘 알기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할 것”이라며 “저희가 든 것이 아이돌 응원봉이라는 이유로 보내는 부정적인 시선은 차별이며 옳지 못한 일이다”고 주장했다.
 
  한편 팬덤은 직접적인 지원 활동도 벌여왔다. 연예인의 이름이나 팬덤의 이름으로 복지 시설 및 자연재해 피해 국가에 성금을 기부하고, 개발도상국에 집과 도서관을 건설하는 등 팬덤 공동체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콘서트장에 결식아동을 후원하는 쌀 화환이 놓여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으며, 팬과 아티스트가 함께 봉사 캠프를 진행하거나 팬이 시작한 모금 활동에 아티스트가 큰돈을 쾌척한 미담도 전해진다. ‘조공’이라고 불리는 팬들의 아티스트 서포트 문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취존’의 자세가 필요하다
 
  스포츠동아 뉴미디어 팀장 양형모 기자는 SNS 계정에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내 인생의 가장 어둡고 낮았던 순간에, 그에게 일종의 빚을 진 경험이 있다는 것’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지든 간에 여성 팬들은 취미 활동을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으며 스스로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문예창작과 A 양에게 팬덤 활동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묻자 “무언가를 좋아함으로서 나의 열정적인 모습을 만났고,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재능이나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는 일도 있었다”라고 답했다. A 양은 “누군가를 좋아하고 지지한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과 애정을 들여야 하는 일이고, 나는 그 노력과 애정을 들이면서 행복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부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덧붙였다. 같은 과 B 양은 “힘든 순간들이 찾아왔을 때 가장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은 팬덤 활동이었던 것 같다”며 “그 사람이 성실하게 사는 것을 보며 의지를 다지기도 했고, 노래 가사를 보고 들으며 위로를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에는 소위 ‘빠순이’라고 불리는 여성 팬들을 비롯해 자신과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외부의 편견과 폄하에도 불구하고 여성 팬들은 기죽지 않고 취미 생활을 이어나가며 자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여성 팬들은 자신이 겪은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접근하고 있다.
 
  나와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는 것, 그 사람이 가진 특성에 상관없이 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 우리가 입을 모아 바라온 민주적인 사회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사회를 이루는 것은 내 주변을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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