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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버티게 해준 원동력은 ‘사람’이다
현재건 기자  |  ryan5076@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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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1호] 승인 2017.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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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일)은 박래전 열사의 기일이었다. 본교 인문대학 학생회장이었던 박래전 열사는 1988년 6월 4일, “광주는 살아있다. 청년학도여 역사가 부른다. 군사파쇼 타도하자.”라고 외치며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했다. 그의 형인 박래군은 동생의 죽음을 계기로 인권운동가의 길로 접어들었고 30년 동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곁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다. 인권운동가로서 그를 움직이게 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30년 동안 인권운동을 전개한 그의 삶을 한번 들여다보자.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인권재단 사람’의 부설기관인 ‘인권중심 사람’에서 소장으로 일하고 있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이 함께 만든 시민단체인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인권운동가 박래군입니다. 1988년도 6월 4일 숭실대학교 학생회관 옥상에서 “광주는 살아있다. 청년학도여 역사가 부른다. 군사파쇼 타도하자.”라고 외치며 분신했던 박래전 열사의 형이기도 합니다.
 
5.18 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박래전 열사를 언급했을 때 어떤 심정이셨나요?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과 같은 공식석상에서 제 동생의 이름이 언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그 당시 저도 기념식에 참석했었는데 만약 주변에 사람들이 없었다면 대성통곡을 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 동생을 기억하고 숭고한 죽음으로 인정해준 문재인 대통령에게 감사했어요. 

  박래전 열사는 박래군 소장님께 어떤 동생이셨나요?
 
  제 동생은 저와 두 살 터울인데요. 어릴 때부터 저를 귀찮게 할 정도로 잘 따랐어요. 동네 어른들이 저희를 보고 “창자가 이어졌다”고 할 정도로 제 옆에는 항상 동생이 있었어요. 그만큼 제게 동생은 학생 운동을 함께 했던 동지이자 모든 것을 함께 고민하면서 같은 길을 걸었던 동지이기도 했어요.
 
 
  소장님께서 인권운동을 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동생의 죽음으로 저는 유가족이 됐고, 누구보다도 유가족의 마음을 잘 알았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저와 같은 유가족들을 돕는 일을 했죠. 이 일을 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인권운동가의 길을 걷게 됐어요.
 

  지금까지 다양한 인권운동을 전개해오셨는데 오랜 기간 동안 소장님께서 인권운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저를 인권운동가로 살게 해준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사람’이에요.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아픔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절박함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거든요. 저는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소외된 사람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는 일이 보람찼고 정의로운 일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오랫동안 인권운동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인권재단 사람’은 어떤 재단인지, 어떤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지난 2004년도에 만들어진 ‘인권재단 사람’은 인권운동가와 인권단체를 지원하는 재단이에요. 현재 우리나라의 인권운동은 매우 열악한 조건에 놓여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인권운동가도 많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권단체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저는 재단을 만든 후 인권운동가와 인권단체를 서로 연결할 수 있는 거점을 만들기 위해 2년 6개월 동안 모금 활동을 벌였어요. 마침내 ‘인권중심 사람’이라는 민간 인권센터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기금을 조성해 인권운동가의 생계를 지원하고, 50여 개의 인권단체에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고 있어요.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8년이 지났습니다. 철거민과 경찰이 대치하는 과정에서 6명의 희생자가 발생했고 소장님께서는 355일 동안 희생자들의 빈소를 지키셨는데요, 이때 소장님이 구속된 이유는 무엇이며, 용산참사를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지난 2009년도 1월에 발생한 용산참사는 무리하게 공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6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사건이에요. 그 당시 이명박 정권은 용산참사가 광우병 촛불시위처럼 크게 번지는 것을 두려워했고 무작정 용산참사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들을 막았어요. 저는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의 집행위원장으로서 이에 굴하지 않고 희생자 추모 대회를 주관하려 했으나 지난 2009년도 3월 초에 수배대상이 됐죠. 2010년도 1월 9일에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마치고 이틀 뒤 경찰에 자진 출두해서 구속이 됐었죠.
 
  용산참사는 여전히 진상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진행되지 않은 채 8년이 지난 안타까운 사건이에요.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은 망루에 올라서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정부는 국민의 요구를 듣는 대신 폭력으로 그들을 짓밟았어요. 국민의 생존권을 무시하고 생명을 앗아간 것이죠. 이 사건을 기점으로 정부는 공권력을 악용해 국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에요.
 

  소장님은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의 공동운영위원장으로 계셨고 현재는 ‘4.16연대’의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4.16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국민들은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생중계로 지켜보면서 우리 사회가 사람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돈’ 중심의 사회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를 계기로 국민들은 각성했어요. 유가족들과 국민들은 힘을 합쳐 3년 동안 촛불을 들었고 결국 바닷속에 묻혀 있던 세월호를 끌어 올릴 수 있었어요.
 
  세월호 사건이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가만히 있지 말라”는 거예요. 세월호 사건의 내막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모순이 모두 포함돼 있어요. 이 사건은 진상규명만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문제점을 완벽히 해결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국민들은 가만히 있으면 안 되며, 움직여야만 합니다. 
 
 
  작년부터 손해배상·가압류 제도를 없애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는 단체인 ‘손잡고’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시는데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 제도에는 어떤 문제가 있나요?
 
  손해배상·가압류 제도는 일명 ‘노동조합 파괴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노동조합은 헌법에도 보장된 기본권인 만큼 노동자들은 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정당하게 낼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노동조합을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대부분의 기업이 노동자의 파업을 유도하지만 그들이 파업을 하게 되면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요. 법원은 손해배상 제도에 따라 기업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고요. 이 제도는 1990년대 말에 만들어졌으나 노무현 정권 이후 본격적으로 시행됐고 이명박 정권 때 노동조합의 활동을 원초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등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어요.
 
  이 제도를 바꾸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단체가 바로 ‘손잡고’예요. 저희는 환경노동위원회에 손해배상·가압류 제도와 관련된 노조법 3조의 개정안을 발의했어요.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발의안을 받아들이면 본 발의안이 상정이 될 수 있으나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아직 발의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예요.
 
 
  보수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현 정부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먼저 경제 민주화를 도모해야 해요. 현재 우리나라는 경제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이에요. 하루빨리 경제 양극화를 해소해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해요. 
 
  또한 경제 양극화에서 비롯된 차별과 혐오를 단절해야 해요. 문재인 정부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바로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차별과 혐오를 없애고,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기틀을 다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동생 박래전 열사의 후배인 숭실대학교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한국 사회에서 청년은 사회적 약자에 속해요. 저는 청년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우리가 촛불을 들고 모여서 거리에 나가 외치니 세상이 바뀌지 않았느냐”고요. 어느 누가 촛불시위로 인해 박근혜 정권이 몰락할 것이라고 생각했겠어요? 청년들이 이를 교훈으로 삼아 앞으로 우리 사회를 바꿔나가는 데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부당한 일을 겪었다면 혼자 감내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과 힘을 합쳐 목소리를 내야 해요. 그래야만 청년들도 사회에서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을 거예요. 
 
  한편으로 숭실대학교 학생들이 박래전 열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잘못된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들이 이루지 못한 뜻을 한 번이라도 되새겨주세요. 여러분들도 모두 함께 모여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면 한국 사회를 조금씩 바꿔나갈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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