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라는 나라는 국가 자체가 브랜드다. 수많은 유제품 앞에 ‘덴마크’라는 수식어를 붙이면 프리미엄 제품이 된다. 덴마크 요구르트, 덴마크 우유, 덴마크 치즈는 청정(淸淨)하다는 이미지를 부여받아 고가 제품군으로 분류된다. 비단 유제품뿐만이 아니라 ‘Danish Design’ 이라는 말은 군더더기 없고 미적 감각이 뛰어난 디자인을 통칭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어떻게 하면 이렇게 좋은 국가 이미지를 가질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원칙을 지키고 정의(正義)를 수호하려는 덴마크 국민들의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각 정부 부처의 수장(首長)을 검증하려는 인사청문회가 진행 중인데, 덴마크의 원칙과 정의가 한없이 부럽다. 우리나라에서의 정의는 마치 거짓말을 열 번한 사람이 스무 번 한 사람에게 “당신은 나보다 훨씬 더 거짓말쟁이야. 나는 거짓말 한 횟수가 적으니 당신보다 정직한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상황과 비슷한 것 같다.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 한국의 정의라면 덴마크에서의 정의는 언제나 엄격하고 공정하게 적용된다. 이런 차이가 ‘한국’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와 ‘덴마크’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의 가치를 결정짓는다. 수도 코펜하겐에서 선진국의 의미를 되새기고 덴마크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도시 오르후스(Århus)로 이동했다.

  라틴쿼터(Latin Quarter)는 오르후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작은 운하 사이로 레스토랑과 낭만적인 카페가 줄지어 있는 곳이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나름의 ‘카페 거리’를 자랑하고 있지만, 라틴쿼터에서는 비슷한 분위기의 식당이나 카페를 찾아볼 수가 없다. 조명의 밝기, 사용하는 컵의 디자인, 벽지의 톤, 흘러나오는 음악의 장르, 탁자의 재질과 높낮이도 같은 것이 없다. 체인점이 많은 한국에서는 몇십 미터마다 비슷한 간판으로 통일된 빵집과 치킨집이 도시를 뒤덮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같은 맛의 양념과 소스는 없다. 더 많은 카페의 다른 맛과 인테리어를 감상하기 위해 30분 간격으로 옮겨 다녔던 기억이 생생하다. 덴마크에서의 효율성은 각기 다른 것이고, 한국에서의 효율성은 누구나 똑같은 맛을 강요받는 것이다. 왜 이 나라의 도시에 있으면 한국이 자꾸 생각나는 것일까. 밤의 길이가 길어져 오후 네 시 정도만 되어도 컴컴해지는 북유럽의 가을밤을 라틴쿼터의 낭만적인 카페들이 밝힌다.

  아로스 오르후스 쿤스트뮤지엄(Aros Århus Kunstmuseum)은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꼭 가봐야 하는 명소이다. 얼마 전 서울역 근처에 ‘서울로 7017’이라는 보행용 고가도로가 개통되었고, 그 주변에 ‘슈즈트리’라는 전시물이 설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슈즈트리를 두고서 여러 가지 예술성 논쟁이 있었지만, 여기에서는 그런 논쟁은 없다. 예술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더 중요시하는 것 같다. 인간의 다른 생각 자체가 예술이고 그것이 공감을 얻을 수 있다면 위대한 예술로 불릴 뿐이다.

  북유럽의 깊어 가는 가을밤에 라틴쿼터의 카페에서 무엇이 가치를 만들어 내고, 또한 무엇이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를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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