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로맨스 소설에는 공식 같은 설정이 있다. 잘난 주인공들이 불타는 사랑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되는, 이를테면 ‘독자들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설정’이다. 이러한 대리만족 요소는 로맨스 소설이 꾸준히 사랑받아 온 이유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10년 넘게 사랑받아 온 ‘로맨스 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에서는 이러한 공식을 찾아볼 수 없다. 특별히 잘나거나 못난 곳 없는 주인공들은 그저 덤덤히 자신의 일상을 살아가며 이따금 서로를 무심한 듯 애틋하게 보듬어줄 뿐이다.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성장 소설에 로맨스라는 요소가 가미된 것 같을 정도다.

  그러나 감히 추측건대,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이유는 그러한 일상성이다. 이 소설은 독자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주인공으로 만든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공진솔’과 ‘이건’이 아닌 독자인 ‘우리’가 되는 것이다. 이도우 작가는 특유의 문체로 ‘우리’의 모습을 덤덤히, 그렇지만 섬세하게 그려낸다. 대사 하나하나는 우리의 마음을 서늘한 가을바람처럼 쓸고 지나갔다가, 그 서늘함에 몸을 한 번 움찔하기도 전에 눈시울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다.

  깊은 밤이나 새벽에 읽는 것보단, 점심을 먹은 후 창가에 앉아 서서히 붉게 물들어가는 햇살을 받으며 읽기를 권한다. 책을 덮고 나면 내가 그러했듯, 책 표지를 물들인 노을과 함께 여운이 섞인 한숨을 내뱉게 될 것이다. 더불어 어쩌면 전쟁 같은 일상 속에서 파도 같은 사랑을 겪고 있는 여러분에게, 이도우 작가가, 여주인공 공진솔이 속삭인 말은 마음속 깊은 곳에 조심스레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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