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 한 학기 수업을 매듭짓고 여름방학을 맞이하면서 두 달 동안은 읽고 싶은 책 10권을 모두 읽어 보겠노라고 굳은 결심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계획과 실천의 간극에는 항상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며, 얄팍한 책 4권조차도 애면글면 읽었다. 그중 한 권을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고 싶다. 그런데 책을 소개한다는 말이 스스로도 참 마뜩잖게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식당에서 먹은 같은 음식에 대한 평가가 사람에 따라 매우 상이할 수 있는 것처럼 내가 읽을 만하다고 생각한 책이 누군가에게는 “참 별로였어.” 내지는 “시간 낭비였어.”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네마다 도서관이 생기면서 사서 추천 도서 목록이 전보다 더 자주 눈에 띈다. 유명 도서관의 사서 추천 도서 목록이 인터넷을 통해 소개되기도 한다. 주 5일, 40시간을 꼬박 일하시는 분들이 그 많은 책을 언제 다 읽고 그중에서 양서와 악서를, 실용서와 무용서(無用書)를 어떻게 골라서 추천하고 소개할 수 있지? 이런 의심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적어도 이 글은 책을 숙독하고 나서 키보드 꾹꾹 눌러 가며 썼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 꺼낸 말이다. 이 글을 읽고 내가 소개하는 책의 첫 장을 펼치는 귀하디귀한 손길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분들이 책을 읽으면서 적어도 실망하거나 후회하지는 않을 거라는 얕은 믿음으로 쓰던 글을 마저 이어가 본다.
 
  TV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기사에는 종종 대단한 사람들이 소개되곤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대단한 사람들이란 남이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을 감행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부부가 직장을 그만두고 중고 버스를 구입해서 자식들과 함께 세계여행을 떠난다든지, 청년이 낡은 오토바이 하나에 의지해서 홀로 대륙을 횡단한다든지 하는 소식을 접하곤 한다. <나는 엄마와 함께 살기로 했다>는 결혼 후 엄마와 떨어져 사는 나에게 조금 더 각별하게 다가왔다.
 
  이 책은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어느 날 아침에 걸려온 엄마의 전화 한 통으로 시작된다. 엄마는 일 년에 아들을 네 번 본다고 하면 죽을 때까지 사십 번이나 볼까 말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이후 저자의 삶을 많은 부분 바꿔 놓았다. 몇 년 후 저자는 만 15년을 다닌 좋은 직장을 그만둔다. 그리고 다시 몇 년 후 엄마 곁으로 내려온다.
 
  이 글은 그렇게 해서 보내게 된 일 년여 동안의 엄마 체험에 관한 기록이자 그동안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던 삶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중년이 된 아이의 엄마 체험 프로젝트의 핵심은 여행이다. 사정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많은 곳에 ‘함께 놀러 가기’인 것이다. 주저리주저리 긴 글을 적어 내려가지만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내 엄마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사랑해.”이다. 엄마는 그랬다. 당신 몸이 아프다는 데도 그것 때문에 자식이 걱정하는 게 더 걱정이었다.
 
  책의 마지막에 저자는 말한다. 오늘도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나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엄마의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우주의 하루는 소중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마지막 문장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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