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곳에 있는 것은 건져 올리고, 먼 곳에 있는 것도 앞에 가져다 놓아라. 이렇게 해야 세상 사람들의 의심을 끊고 그들이 애쓰고 힘쓰는 것을 성취한다.[鉤深致遠, 以定天下之吉凶 成天下之亹亹者]” 이는 지혜의 보고로 알려져 있는 「계사전」상 11장에 있다. 
 
  여기서 깊은 곳, 먼 곳은 우선 공간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마음속이나 보이지 않는 것도 깊은 곳에 해당될 것이며, 소외된 것, 잊혀진 대상, 이해관계가 없는 일도 먼 것이라 할 수 있다.    
  
  저 팽목항 앞바다 맹골수도라는 험하고 깊은 바다 속에 있는 침몰선을 끌어 올린 것은 일종의 구심(鉤深)에 해당한다. 많은 한과 안타까움과 의문과 억측을 안고 있는 그것을 수면 위로 아니 물 밖으로 꺼내 놓았다. 찬반 논란도 만만치 않았고, 결정에 3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으며, 엄청난 비용도 들어갔다. 끌어 올린 저 배에서 나온 유류품, 유골은 실종자 가족들의 마음을 다소라도 위로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것만을 위해서 저 배를 끌어낸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저 크고 숱한 의심과 한(恨)을 해소하고, 악한 억측을 토해내는 입과 진짜보다 더 설득력 있는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는 손을 막을 수 있을까? 우리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힘쓰고 있는 그 무엇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까? 
 

  치원(致遠)은 비전 메이킹이라 할 수 있다. 그것도 자기의 손바닥 안에 놓고 상대의 눈 앞에 디밀어야 한다. 그러면 그것의 성취를 위해 힘써 노력한다. 사드(THAAD) 배치나 원전폐기 결정이 초래할 먼 결과에 대하여 우리 대부분은 잘 모른다. 그것이 과연 우리의 안보를 지킬 견고한 방패가 될 것인지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원이 끊기는 것은 아닐지 의구심이 크다. 부분적 근거에 의한 목소리가 서로 높으니 아무런 시원한 결정이 나지 않고 따라서 추진되는 것이 없고 성취됨도 없다. 어디 이뿐이랴! 어디엔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호소도 못하는 외로움에 신음소리조차도 내지 못하는 아픔이 있을 것이다. 감당 못하는 분노에 삶이 붕괴되는 사람들도 어디엔가 있다. 산골짜기로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 위험 무릅쓰고 나서듯, 적진에 떨어진 라이언 일병을 구하는 결단을 내리듯 멀고 험하고 보이지 않는 곳까지 나아가 그 실상을 다 드러내야 한다. 문제가 눈앞에 드러나면 해결의 길도 따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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