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장점 중 하나는 합법적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데 있다. 그것도 퍽 저렴한 비용으로 말이다. 독서를 통해서 우리는 경험과 사유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생각과 의견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현상을 다른 관점으로 보고 사유할 수 있는 눈이 생긴다. 시야가 넓어지고 사고가 트이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2016년 11월의 저자와 마음으로 대화를 주고받는다. 마치 내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어때?”라고 묻는 듯하다. 

  저자는 오랫동안 몸담았던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걸어 나와 타인의 운전석에서 대리기사로 살아가며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면서 이 사회를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으로 규정하고 자신이 그동안 대학 강의실에서든 운전석에서든 타인의 욕망을 대리한 대리인간으로 살아왔음을 고백한다. 그곳에 진정한 나는 온데간데없고 행위의 통제, 언어의 통제, 사유의 통제를 당한 ‘을’이 있을 뿐이다.
 
  차주와 대리기사의 대화에는 듣고 말하는 행위만 남는데, 대리기사는 말하기보다는 듣고 대답하기 때문에 대화는 늘 일방적으로 진행된다. 그렇기에 수동적이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대리기사는 그날 대리운전을 마쳐야만 비로소 아빠, 남편, 김 아무개 같은 본인의 진짜 이름과 호칭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교수와 학생 중 더 주체의 자리에 있는 이는 언제나 교수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교수자가 강의실의 유일한 주체가 되어 말을 쏟아내는 순간 그 안의 학생들은 타인의 운전석에 앉은 대리기사가 되어 버린다. 스스로 사유하기를 멈추고 영혼 없는 대답만 기계적으로 하게 된다. 그러니 어떻게 생각하냐는 교수의 질문에 주체적으로 답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학생들은 오히려 강의실을 벗어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자유를 되찾는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행동과 언어가 통제된 채 누군가의 욕망을 대리 수행한다. 점점 더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잊게 되고 여기에 익숙해진다. 더욱이 이 사회는 우리가 마치 주체인 것처럼 느끼도록 환상을 덧입힌다. 내가 내 의지에 따라서 능동적으로 사유하고 행동한다고 믿게 만드는데, 모두 착각이고 허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대리운전이라는 노동과 타인의 운전석이라는 공간을 통해 비로소 대리사회의 괴물, 즉 사회가 만들어 낸 견고한 시스템과 마주하게 된다. 이에 대해 절망하거나 침묵하기보다는 온전한 나로서 사유하고 주변의 또 다른 나를 주체로서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에서는 통제되는 감각에 대해서, 2부에서는 대리인간이 되는 가족에 대해서, 3부는 주체가 될 수 없는 대리노동에 대해서 본인의 경험담 여러 편을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대리사회>의 저자가 그랬던 것처럼, 나는 오늘 이곳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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