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무한한 삶. 그럼에도 우리의 삶은 일생, 즉 하나다. 우리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결국 미쳐 버렸을 것이다.”

작가에게 1991년은 세계관의 원점이었다고 한다. 역사를 회의하고 진실을 열망하게 된 분기점이었다. 소설 속 화자는 1991년 5월 투쟁이 끝난 후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던 대학생이다. ‘나’는 소용돌이 안에서 분투하고 자유를 열망하지만 소용돌이의 밖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를 통해 격정의 90년대를 바라본다.
 
  작품 속에는 1990년대를 살아가는 ‘나’와, 그 주변부의 인물과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역사적 기록에서 조명 받지 못한 개인의 진실을 파고들었다. 소설은 나의 ‘일생’을 다루지만 수많은 개인의 이야기들이 ‘나’의 이야기에 끝도 없이 끼어든다.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에는 인과관계조차 부여되어 있지 않다. 소설의 여기저기는 ‘우연’으로 접합되어 있다. 일제 때 징용되었던 할아버지가 남긴 사진을 빌미로 총학 선전부의 정민과 사귀고, 1991년 강경대 사건을 목격함으로 투쟁과 방황을 거듭한 끝에 입북 예비 대표로 독일로 건너가는 이야기가 소설의 중심을 이룬다. 입북하기 위해 넘어간 독일에서도 우연히 여러 개인을 만나 흐름을 함께 한다. 방황, 투쟁, 자유. 정체성을 찾는 시기는 외롭지만 서로 엮여 있다.
 
  중첩되고 증식하는 개인들의 이야기는 ‘나’의 삶과 하나의 실로 꿰어 있다. ‘나’의 시대는 격변을 반복하고 그들의 시대도 마찬가지다. ‘나’의 정체성을 뿌리 깊게 흔든 시대는 ‘나’의 주변부도 흔든다. 소설을 읽다 보면, 인간이란 역사에 의해 막무가내로 구겨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의 삶을 변조하고 뒤흔드는 역사의 희롱은 허무하기까지 하다. 시대의 소용돌이에서 나약하게 남아버린 ‘나’와 우리는 어떻게 정체성을 찾아야하는가. 허무 앞에서 작가는 한 인간이 쌓아온 삶이 무의미로 집약되지 않게 생명을 일으킨다. 그 끈질긴 노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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