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어떤 사람은 윤동주 시인을 단순히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로 기억할 것이며, 어떤 사람에겐 아름다운 시를 지은 시인으로 기억될 수 있다. 지난 6일(수)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청운문학도서관에서 ‘문학을 넘어선 윤동주, 대중문화 속 동주’라는 제목으로 강연이 진행됐다. 본 강연에선 윤동주 시인이 대중문화 속에서 어떻게 표현됐는지 설명하고 있다. 지금부터 대중문화로 스며든 시인 윤동주를 만나보자.

  대중문화 속에서 윤동주 시인을 만나다

  올해는 윤동주 시인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아마도 윤동주 시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아무리 수업에 집중하지 않았던 학생들도 윤동주 시인만큼은 교과서를 통해 여러 번 접해봤을 것이기 때문이에요. 이외에도 윤동주 시인은 영화나 드라마, 혹은 연극을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어요. 지금부터 저는 대중문화 영역에서 윤동주 시인을 어떻게 그려냈는지 순서대로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윤동주 시인은 1979년에 처음으로 특집극의 소재로 활용됐어요. 여러분은 특집극이라는 단어가 다소 생소할 수 있겠지만, 그 당시엔 요새 방영하는 TV 드라마의 미니시리즈처럼 3.1절 특집극이나 8.15 특집극을 방영했어요. 그만큼 특집극은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문화 콘텐츠였죠.

  이 시기를 기점으로 윤동주 시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제작되기 시작해요.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제목을 딴 특집극이나 1984년 12월에 방영한 ‘마돈나여 광야에서 별을 노래하라’가 윤동주 시인을 소재로 한 특집극 중 가장 유명했었죠. 특히 ‘마돈나여 광야에서 별을 노래하라’는 3부작에 걸쳐 이상화 시인과 윤동주 시인, 이육사 시인을 차례대로 다룬 특집극이에요. 이 극은 첫 번째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이어질 수 있도록 연출했어요. 이 극은 후쿠오카 감옥에서 윤동주 시인이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요. 극의 끝부분 역시 윤동주 시인이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서시를 읊는 것으로 마무리되죠. 그런데 여기서 의아한 것은 1984년 12월에 방영된 특집극은 광복절을 기념해 제작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12월에 방영됐다는 것이에요. 이는 ‘마돈나여 광야에서 별을 노래하라’라는 특집극은 1984년 8월 15일 즈음 방영될 예정이었지만, 그 당시 방송국들이 통폐합되면서 보류됐기 때문이에요. 특히 1984년 9월에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지면서 정부는 대외적으로 자극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담은 TV 프로그램을 방영하지 못하도록 제한했어요.

  한편 방송국들이 통폐합됐다는 것은 방송 환경이 굉장히 경직됐다는 것을 의미해요. 왜냐하면, 방송국들의 의지가 아닌 정부의 압박으로 통폐합됐기 때문이죠. 이로 인해 80년대 이전에는 주로 멜로 드라마나, 홈 드라마를 위주로 방영했지만, 그 이후부터 대부분의 방송사에서 국민의 역사의식을 살릴 수 있도록 단막극 혹은 특집극을 제작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돼요. 그래서 역사적인 인물이나, 영웅 등을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하기 시작하죠.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윤동주 시인 역시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활용됐어요. 가령 한 드라마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유년시절에 ‘순이’라는 허상의 인물을 등장시키거나, 윤동주 시인의 사랑하는 사람을 하숙집 딸인 ‘영애’로 설정하는 등 극적인 요소를 강화하기 위해 각색을 하기도 했죠.

 

  시인 윤동주, 무대 위에 서다

  2000년대 이후부터 윤동주 시인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거의 제작되지 않았어요. 대신 뮤지컬로 제작됐죠. 뮤지컬이 제작되기 이전인 1997년도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는 연극의 소재로 여러 번 활용됐어요. 물론 지금까지도 그는 소극장이나, 소규모 극단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어요.

  여러분, 혹시 ‘윤동주, 달을 쏘다’라는 뮤지컬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본 공연은 올해까지 총 4번에 걸쳐 공연됐어요. 이렇게 여러 번 다시 공연된 작품은 상당히 성공적인 결과를 낸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실제로 2012년도와 2013년도에 관객 점유율이 약 93%였고, 그다음 지난해와 올해에는 거의 100%에 가까운 관객점유율을 기록했죠.

  그렇다면 윤동주 시인을 드라마의 소재로 다뤘을 때와 뮤지컬의 소재로 다뤘을 때는 어떤 차이를 보였을까요? 아무리 같은 소재도 각 매체만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거든요. 뮤지컬의 경우에는 윤동주 시인의 서정적인 시와 음악이 어우러져 그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강조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윤동주 시인이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시기는 일제강점기 시대였고, 그 당시 그는 경성으로 유학을 가요. 뮤지컬에서는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화려한 무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지금의 서울인 경성을 무대로 재연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죠. 그 당시 경성은 모더니티, 즉 근대성을 나타낼 수 있는 최상의 배경이거든요. 이처럼 여러 가지 조건을 고려해봤을 때 윤동주 시인은 뮤지컬의 소재로 삼기에 최적의 인물이라고 볼 수 있어요.

 

  영화 ‘동주’로 본 윤동주 시인과 송몽규

  윤동주 시인은 뮤지컬의 소재로 활용된 이후에도 영화를 통해 대중들에게 각인됐어요. 그중의 하나가 바로 지난해 2월에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입니다. 이 영화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동시에 그의 동료인 송몽규를 더욱 부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즉, 윤동주와 송몽규의 비중을 같게 두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죠. 송몽규는 지금의 윤동주 시인을 만든 촉진제의 역할을 해준 인물이에요. 그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당선되거나, 졸업 당시 우등상을 받는 등 윤동주 시인보다 오히려 더 많은 재능을 보여주죠. 그런 면에서 윤동주 시인이 송몽규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이준익 감독 역시 이러한 점을 부각하기 위해 송몽규의 비중을 높였어요. 아마도 많은 관객이 영화 ‘동주’에 등장한 송몽규를 보면서 ‘윤동주 시인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에 송몽규가 중요한 존재구나’ 혹은 ‘그때 당시 윤동주 시인 못지않게 송몽규가 중요한 인물이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것 같아요.

  영화 ‘동주’만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시를 영화 속에 담아내려고 했다는 점이에요. 즉, 영화 속에서 모든 시를 평등하게 표현하려고 하죠. 영화에선 ‘별 헤는 밤’이나 ‘자화상’, ‘참회록’ 등 윤동주 시인의 시를 배우 강하늘씨의 나레이션으로 삽입해요.

 

  민족시인 ‘윤동주’에서 인간 ‘윤동주’로 나아가다

  지금까지 TV와 뮤지컬, 영화 등 다양한 대중매체에서 윤동주 시인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어요. 아마도 여러분들 중에는 윤동주 시인을 소재로 한 대중매체와 문화콘텐츠가 생각보다 적다는 생각을 하셨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시인들을 대중문화 콘텐츠에 녹여내기가 절대로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윤동주 시인은 대중문화 분야에서 다양한 콘텐츠로 제작된 편이에요.

  정리하자면 윤동주 시인은 본래 국민 시인 혹은 민족 시인이라는 신화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의 시는 교과서에서도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윤동주 시인을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이자 위대한 시인으로 기억하고 있죠. 이에 따라 80년대 이전까지 여러 대중매체들에서는 ‘윤동주’라는 인물 자체에 관심을 갖기보다 민족성과 국민성을 부각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나 2000년대 이후부터 윤동주 시인은 뮤지컬이나 영화 등을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재현되기 시작했어요. 최근에는 많은 예술인이 윤동주 시인을 더욱 깊이 있고 입체적인 인간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고 있어요.

  여러분도 윤동주 시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단순히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윤동주 시인을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해보는 것도 좋아요.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를 보면 대중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많거든요. 또한, 여러분 각자의 상상력이 모여 새로운 시도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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