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사람들로 빽빽하다. 핸드폰을 만지는 사람과 잠을 자는 사람 두 부류의 사람이 내 눈에 들어온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책을 손에 든 이상 다른 일을 할 여력이 없는 데다가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리기에도 어색한 장소인 덕분에 책에만 집중하게 된다. 지하철 한 량 전체가 라르고(Largo), 녹턴(Nocturne Op. 9-2), 보칼리제(Vocalise) 같은 클래식 음악이 유유히 흐르는 우아한 도서관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이곳에서 부담 없이 읽기에 적격인 책을 소개해 드릴까 한다. 바로 오가와 사야카라는 일본인 문화인류학자가 쓴 <하루 벌어 살아도 괜찮아>이다. 책 제목부터가 자본주의 시대를 역행하는 문장이다. 우리는 더 넉넉하고 안정된 미래를 위해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이나 한 달을 쓸 만큼 벌어야 하는 현재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풍성한 내일을 기약하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문장이다. 그래서일까 평서형인 “괜찮아.”가 마치 의문형인 “괜찮아?”로 읽힌다.

  이 책은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의 삶, 가치관, 인간관계, 그들이 존재하는 사회 구조와 경제 구조를 밝힘으로써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미래 우위의 가치관, 기술과 지식의 축적, 생산과 발전을 지향하는 시스템에 질문을 던진다. 또한 오늘에 집중하는 삶이 현재의 자본주의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 아님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비공식 경제 활동을 하는 탄자니아 도시민들의 생활을 보여 준다. 저자는 다른 논리와 방식으로 움직이는 이 세계를 15년간 지근거리에서 관찰해 왔다.

  탄자니아 젊은이들은 정확한 목표와 지향점이 없는 삶을 ‘앞으로 앞으로 스타일’이라고 표현한다. 우리에게는 이 일 저 일을 전전하고 이 도시 저 도시를 표류하는 삶이 불안하고 불온해 보이지만, 저자는 이들에게서 특별한 불안이나 공허함을 드러내는 말을 거의 듣지 못했다고 한다. 탄자니아 도시민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춘 기술로 여러 업종을 전전하는 삶을 산다. 한 가지 일에 실패해도 다른 일로 먹고살고, 누군가가 실패해도 다른 사람의 벌이로 먹고산다. 그들에게 사업 아이디어란 현재 자신의 행동 및 상황과 우연히 맞아떨어져 현실화되는 것을 뜻한다. 오랜 시간 철저히 계획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보는 우리네 상식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렇다고 문명의 눈으로 재단하여 이들을 보고 미개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들에게 장기적인 미래를 계획하는 일은 어렵지만 좋은 기회가 왔을 때 가능한 행동이라면 무엇이든 도전해 보는 대담함은 있다. 불확실한 세계에서도 자신감과 여유를 잃지 않는다. 저자는 이들이 자신의 삶에 긍지를,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에 확신을 갖고 있는 듯하다고 보았다. 어느 누구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하루하루는 늘 ‘생존 기념일’이다. 우리는 매우 일관되게 미래를 위해 현재를 살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미래를 더 정확하게 예측하고 진단할 수 있는 제도와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삶은 불안한가? 이 책을 통해서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만나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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