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골과 뉴욕을 넘나들며 봉준호 감독의 2017년 추격전이 시작된다. 목적은 납치당한 슈퍼돼지 ‘옥자’를 집으로 귀환시키는 것, 이를 위해 옥자의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인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가 신발 끈을 고쳐 맨다. 영화 <옥자>는 봉준호 감독이 공인한 첫 번째 ‘사랑 영화’이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전원의 파라다이스를 연상케 하는 강원도 산골 속, 소녀 미자와 옥자는 서로가 서로의 친구가 되어주며 끈끈한 유대를 쌓아 나간다.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쓸 줄 아는 이들의 낙원은 욕심내지 않기에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옥자’의 존재 자체가, 영화가 가지는 모든 모순의 시발점이 된다. 유전자 변형에 의해 탄생한 ‘옥자’는 현대 자본주의 탐욕의 산물이다. 다시 말해 식품으로서의 옥자를 뉴욕으로 불러 들이고자하는 미란도 기업의 경영 방침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본주의 소비사회가 요구하는 더 크게, 더 값싸게를 이해하지 못하는 미자에게 미란도 기업의 행위는 납치 이상으로 여겨질 수 없다. 이처럼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세계가 미자의 시선에서 미자의 행동으로 그려질 때, 누군가에게는 동경의 대상으로 여겨졌을 뉴욕의 고층 빌딩과 화려한 야경은 탐욕 가득한 대도시의 정글로 변모한다. 강원도 산골-서울-뉴욕을 오가며 이루어지는 추격전은 블랙 코미디의 형태로 그려지는데, 미자가 뉴욕에 도착하고부터는 영화의 톤은 블랙 코미디로서의 양상을 보인다. 즉, 뉴욕에서의 시간이 훨씬 더 현실 세계에 부합하지만 봉준호 감독은 이를 희화화 시키며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갖는 대기업의 모순과 인간의 탐욕을 풍자한다. 물론 이가 더 극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옥자와 미자가 함께 했던 비현실적 파라다이스가 따듯한 우화로서 자본주의의 극한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어린 산골 소녀의 다소 혼란스럽고 무질서 한 추격전에는 그 어떠한 물질적 목적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온갖 모순으로 가득한 현대 사회 속 산골 소녀의 따듯한 추격전은 그렇기에 사랑 영화로서 적합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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