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미국을 전쟁에서 이긴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나라다. 미국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무려 15년간 계속되었던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미국은 무책임하게 고엽제까지 뿌려대며 베트남의 국민과 국토를 유린(蹂躪)하고 오염시켰지만 승리를 쟁취한 나라는 베트남이었다. 국가를 위기에서 구해내고 외세의 침략을 막은 사람을 우리는 국부(國父)로 추앙하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동족을 배반한 사람을 매국노라고 멸시한다. 남녀노소와 사회적 계층을 초월하여 무한한 존경을 받는 베트남의 국부, 그의 이름은 호치민(胡志明)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며 국민들과 똑같은 집에서 기거했던 그의 생전 유언은 “나를 우상화하지 말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외국으로 망명하여 생을 마감한 자칭(自稱) 국부를 가진 대한민국은 호치민을 생각하면 좀 민망하기까지 하다. 국민들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붙여진 사이공이라는 이름을 내리고 이 도시의 이름을 ‘호치민(Ho Chi Minh)’이라고 부르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호치민의 호치민에서 정통성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본다.

  근대사를 피로 물들게 한 여러 제국주의 국가들이 있었지만 프랑스와 영국의 악행은 용서하기 힘들어질 때가 많다. 현재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족 간의 분쟁과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문제의 발단은 결국 프랑스와 영국으로 귀결된다. 조선의 강화도로 침입하여서는 외규장각의 의궤를 훔쳐가고, 그것의 반환을 빌미로 우리에게 TGV를 팔아먹은 나라도 프랑스이지 않았던가. 이런 생각이 머리를 채우고 나니 호치민 중심가에 위치한 노트르담 성당, 중앙 우체국, 오페라 하우스 등 소위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관광명소’라고 불리는 건축물들이 감흥을 만들어 내지 않았다. 호치민을 ‘동양의 파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이유가 고작 프랑스인을 위한 교회와 편의 시설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짜증이 났다. 그러나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지 못하고 전투병까지 파병했던 대한민국을 대신해 베트남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 잠시 동안의 ‘과격한 짜증’을 잠재웠다. 인민위원회 청사 앞에 세워진 호치민의 동상은 프랑스의 만행과 한국군의 참전을 어떤 관점으로 비교하고 있을는지.

  한 나라의 경제 상황을 알아보려면 그 도시에서 가장 큰 시장을 가보면 된다. 벤탄(Ben Thanh)시장은 나름 깔끔하게 정리된 종합시장이다. 먹을 것부터 의류, 전통공예품과 짝퉁제품까지 혼재하는 재미있는 곳이다. 국가별로 손님의 성향을 이미 파악하고 있는 듯한 상점 아주머니들의 당찬 표정이 실로 대단해 보였다. 상인들이 부르는 가격의 10분의 1가격으로 거래를 시작하라는 가이드북의 설명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느끼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나의 ‘파격적인 오퍼(extreme offer)’를 무표정으로 깔아 뭉개버리는벤탄 시장의 상인들.

  도시로서의 호치민은 하루면 거의 다 돌아볼 수가 있다. 그러나 외세를 물리친 위대한 영웅 호치민을 알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국가의 정체(政體)나 이념으로는 한 사람을 좋게도 나쁘게도 평가할 수 있지만,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는 함부로 붙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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