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교육 유감

  ‘필로폰’의 일본식 발음을 음차한 ‘히로뽕’은 환각상태에 빠지게 만드는 마약성분의 각성제로서 피폐한 삶의 후유증에도 연예계 종사자, 조직폭력배, 권문세가 자제들이 환락의 일탈을 위해 애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국가와 히로뽕의 글자 조합인 ‘국뽕’은 국가에 대한 자긍심이 도를 넘어 국가와 조금이라도 연이 닿으면 무엇이든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행태를 비꼬는 표현이다. 듣기로는 한국사 분야에서 그럴싸한 근거를 내세워 태곳적 역사를 미화하는 것을 꼬집어 처음 썼다고 한다. 보수정권 시절, 권력자의 의중을 읽는 데 촉이 발달한 영화제작자들이 경쟁적으로 애국심을 고취하는 내용의 작품을 여럿 흥행시킨 것도 말의 유행에 일조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작품의 예술성을 평하면서 널리 회자되었기 때문이다. 과도한 국가찬양은 마약주사나 다를 바 없는 허망한 짓이라는 게 그 함의일 테다.
 
  재학생들은 SNS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숭뽕’을 운운한다고 들었다. 교사 관련 교양강의를 두고서 그리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국뽕’을 패러디한 조어이지 싶다. 구절양장 역경을 딛고 달성한 역사적 기록과 그 주역을 지나치게 찬양·미화한대서 마약주사에 빗대 희화화하는 것이리라.
 
  문제는 교양이다. 왜 교양이고 무엇이 교양인지 깊이 고민할 일이다. 학생들이 숭뽕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걸 보면 교양 설계에 뭔가 자아도취적인 요소가 가미되었을 개연성이 농후하다. 이공계에서, 교양은 뭐 하려 하냐고 볼멘소리를 할만도 하다. 교양이라는 게 ‘당의를 입혀 달달하게 만든 인문계열 전공’과 ‘고객 친화적으로 보이도록 팬시하게 포장한 사회계열 전공’이 절반을 차지하고 나머지 대다수는 백화점 문화센터 수준의 천박한 얼치기 교양이기 때문이다. 전공과 선순환하지 않는 교양은 단언컨대 교양이 아니다.
잘은 몰라도 교양을 개설하지 않는 학과가 없지 싶다. 심지어 ‘행정팀’이 개설학과인 과목도 수두룩하다. 더욱 가관인 것은 아무나 가르친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임교수로 임용되면 두서너 해만 지나도 교양 쪽은 쳐다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품이 많이 들어서다. ‘가사(?)도우미’에게 맡기면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일거양득이다. 맡을 전공이 없으면 그제야 겨우 울며겨자먹기로 교양이나(!) 맡는다. 만만한 게 교양이다. 교양은 교양으로서 전문적이어야 한다. ‘뽕쟁이’나 양산하는 저렴한 교양교육일랑 이제 그만 청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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