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면, 사랑했었다면 누구나 한 번쯤 권태가 온다. 귀찮고, 싫증나고, 하는 모든 일들이 밉살맞게 보이며,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단점이 된다. 우리는 호기심이라는 본능을 가진 인간이기에, 오랜 시간 곁에 있던 연인이 지루해지는 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연애 초기의 설렘은 사라지고, 소름끼치게 몰려오는 권태가 서로에게 독이 될 때 즈음, 작 중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운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서로에 대한 모든 기억이 없어진다는 사실에, 그들은 더 이상 괴롭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함께 자리에 눕는다. 
 
  반전은 조엘의 기억을 지우는 과정 속에 있다. 기억을 지우는 과정 속 조엘은 자신의 뇌 안에서 온몸으로 기억의 삭제를 막는다.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필사적으로 기억을 붙잡지만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가장 먼 기억까지, 조엘은 차례차례 클레멘타인을 잃었다. 
 
  서로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지운 그들은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진다. 매리가 그들의 기억을 되살려 놓기 전까지는 말이다. 다시 올 권태를 두려워한 클레멘타인이 돌아서자 조엘은 말한다. “뭐 어때”. 
 
  권태에 빠져 아무리 서로를 밀어내도, 우리가 사랑했던 순간마저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가 사랑했던 그 모든 것들은 기억이 아닌 ‘추억’이라는 아름다운 형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권태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 여유를 가지고 즐길 때 즈음, 우리는 다시 한 번 사랑에 빠질 것이다. 조엘은 다시 한 번 클레멘타인을 사랑했고, 클레멘타인은 다시 한 번 조엘을 사랑했다. 지워진 기억, 남겨진 추억. 누구나 오는 예상 가능한 권태에게 말한다. “뭐 어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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