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유학생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동양 학생과 서양 학생의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내가 만난 학생을 모두 셈해도 끽해야 일이천 명에 불과하고 소수의 학생이 각 나라의 대표성을 띤다고 보기 어려울 수 있지만 말이다. 내가 경험한 학생으로 한정한다면, 동양 학생은 공부할 때 어휘와 문법을 중요하게 여기고 교사 의존도가 높은 반면 서양 학생은 말하기를 중요하게 여기고 교사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다. 동양 학생은 혼자 조용히 공부하는 데 익숙하고 서양 학생은 함께 떠들며 공부하는 데 익숙하다. 동양 학생은 선생님을 자신보다 상위자라고 수직적으로 인식하는 반면 서양 학생은 선생님을 자신과 동등한 위치라고 수평적으로 인식한다. 내가 만난 학생은 거개가 그러했다.

  여러 심리 실험에서도 동서양의 사고방식, 관점, 지각의 차이가 드러난 바 있다. 그중 일부만 소개하면, 개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서양인은 명사를 사용하고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동양인은 동사를 사용한다. 상대방에게 차를 더 마실 것인지 물을 때 영어에서는 “more tea?”라고 하지만 한국어에서는 “더 마실래?”라고 하는 것이 그 예다. “키위 안 좋아하세요?”라는 물음에 키위를 안 좋아하는 한국인은 “네”라고 대답하지만 똑같이 키위를 안 좋아하는 미국인은 “no”라고 대답한다. 동양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3인칭 시점을 보이고 서양은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1인칭 시점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토론에서도 잘 나타난다. <비정상회담>을 보면 동서양의 차이가 일정한 경향을 띠는 듯하다. 행위를 판단하는 준거가 각자가 성장한 환경과 사회문화적인 요인 등에 따라 달라진다면 옳고 그름의 속성도 행위 자체에 항구적이고 고정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항상 옳거나 항상 그르다고 여겨지도록 모든 행위를 엄밀하게 규정하는 규칙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일치는 인간이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온 결과이다.
 
  사회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 교수는 <생각의 지도>에서 ‘동양의 도와 서양의 삼단논법’, ‘동양의 더불어 사는 삶과 서양의 홀로 사는 삶’, ‘전체를 보는 동양과 부분을 보는 서양’, ‘동양의 상황론과 서양의 본성론’, ‘동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동양과 명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서양’, ‘논리를 중시하는 서양과 경험을 중시하는 동양’,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 차이의 기원’, ‘동양과 서양 중 누가 옳은가’ 등을 주제로 동서양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인의 과잉 확신 편향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과거의 사건에 대해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에는 자신은 처음부터 그 사건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고 과잉 확신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이 때문에 놀랄 만한 결과를 접하고도 별로 놀라지 않는 반응이 나타난다. 이것은 분석적 사고를 하는 서양인보다 종합적 사고를 하는 동양인이 더 쉽게 사후 과잉 확신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을 번역한 이가 니스벳 교수의 한국인 제자이기에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여러분은 평소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한국인의 집단적 사고와 특성도 더불어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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