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의 소설을 읽은 지가 꽤나 오래되었다. 2016년 말에 출간되었음에도 최근에서야 읽게 된 소설 ‘아무도 아닌’은, 내용과 무척이나 걸맞는 표지를 가지고 있었다. 회색으로 칠해진 소설 표지는 예쁘지도 않고, 특별하지도 않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이 책에 실린 단편 소설들의 분위기도 그랬다. 어쩐지 눈앞에 뿌옇게 안개가 낀 듯 흐릿하고, 그렇기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계속되는 그 흐린 시야에 조금 우울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단편 속 화자들은 뿌연 시야 속을 헤매며 혼자 생각하고, 답을 찾으려 한다.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계속해서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게 정말 정답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황정은의 소설을 읽다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책을 읽으며 떨던 다리조차 황정은의 문장들을 눈으로 읽어 내리다 보면 어느새 인가 멈춰있다. 좋게 이야기 한다면 ‘차분해진다’이고 다르게 얘기하자면 ‘착잡해진다‘ 일 것이다. 이 소설은 재미있는 소설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사건은 잘 전개 되지 않고 화자의 생각과 기억을 더듬어 가는 과정 속에서 알 수 없이 흘러가는 문장들에 갇혀 멍해지는 기분도 든다. 그럼에도 황정은의 소설이 자꾸만 생각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화자들은 특별하지 않다. ’양의 미래‘ 속 화자는 눈이 부실 정도로 조명이 밝은 서점에서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실질적으로 하루에 태양빛을 30분 정도 밖에 받지 못하고, ’누가‘ 속 화자는 돈이 많지 않아 도배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집을 구한다. 우리 주위, 그러니까 정말 현실 속에 지금도 존재 할 것 같은 화자들은 마음을 묵직하게 만들면서도 공감을 일으킨다. 황정은 소설에는 가끔 마음을 쿡쿡 찌르는 문장들이 존재한다. 그 문장들은 내 생활 속에 파고들어 고개를 내민다. 밥을 먹다가도, 멍하니 티비를 보다가도 문득 그 문장이 생각난다. 그렇게 다시 황정은의 소설을 찾게 되고 반복해서 읽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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